가계빚 급증에 은행들 줄줄이 금리 인상···‘주담대 블랙홀’ 인뱅 행보 주목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에 적용하는 금리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가계부채가 금융시장 뇌관으로 떠오른 만큼, 금리 인상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 수요 조절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최근 공격적인 영업과 금리 경쟁력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증가세에 일조했던 인터넷전문은행(인뱅) 업계에서는 뚜렷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시중은행과 인뱅의 금리 운용 간극이 생길 경우 쏠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12일부터, 우리은행은 지난 13일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에 적용하는 가산금리를 0.1~0.3%포인트(p) 인상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1일 선제적으로 올렸고,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도 가산금리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리는 시장의 기준이 되는 준거금리에 차주 신용도 등에 따라 매겨지는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빼 산출한다. 준거금리는 코픽스(COFIX)나 은행채 등 시장 지표를 따라가는 만큼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가산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 인상 효과를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최근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가 자리한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79조8000억원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에 결정적으로 기인하고 있다. 지난달 주담대는 6조1000억원 늘며 역대 두 번째 증가폭을 기록했다.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대신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를 높인 이유이기도 하다.
통상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대출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동안은 차주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대출금리 인하 정책을 펼쳤지만, 가계부채 급증세가 심해지면서 조금 더 ‘돈 빌리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기조로 전환한 것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금리는 가계대출 잔액과 포트폴리오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가계대출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어 유의미한 지표 변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억제는 금융당국의 우선적 정책 과제인 만큼 시중은행들의 발 빠른 동참이 이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최근 ‘주담대 큰 손’으로 떠오른 인뱅의 경우 아직 대출금리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지난 8월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23조3828억원으로 6월 말 대비 2조3671억원 증가했다. 카카오뱅크 증가분만 1조9950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 주담대 잔액은 3조5990억원 늘었다.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이 500조원대인 걸 고려하면 23조원대인 인뱅의 주담대 시장 비중을 높다고 볼 순 없지만, 최근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건 사실이다. 비대면 금융에 따른 편의성과 금리 경쟁력이 인뱅 주담대 증가를 이끌었다.
인뱅들은 주담대 증가 ‘주범론’에 선을 긋고 있다. 취급되는 주담대 절반 이상이 타행으로부터 오는 대환(갈아타기)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줄줄이 주담대 금리를 올리고 있어 저금리를 유지하기에는 ‘쏠림 현상’ 등의 부담이 따를 수도 있다.
전일 기준 카카오뱅크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연 4.01~5.75%, 케이뱅크의 아파트담보대출(아담대) 금리는 연 3.83~5.81%로 각각 집계됐다.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4.17~7.14%로 인뱅보다 상·하단이 모두 높다.
인뱅들은 대출금리 인상을 검토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동안의 선제적 조치로 주담대 증가세가 꺾일 것이란 관측이다. 이미 대출 문턱을 높여놨기 때문에 쏠림 현상도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9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크게 늘면서 5대 은행이 주담대 금리 인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인뱅은 8월부터 주담대 연령 제한과 목적 조건 강화 등을 시행해 9월 주담대 증가폭은 직전월보다 둔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들의 자체적인 금리 인상과 별개로 시장금리도 오르고 있어 연내 대출금리는 계속 우상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긴축 장기화 공포로 오른 미국 국채금리가 글로벌 채권시장 상방 압력을 키우고 있다.
당장 은행들이 대출 상품에 적용하는 은행채 금리도 오름세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연 4.52%를 기록했다. 은행채 5년물은 은행 고정형(혼합형) 주담대 금리 산정의 기준으로 쓰이는 지표다.
하나은행 산하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시장금리는 물가 상승률 둔화 속 국내외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반영되며 연중 점진적 하락세를 나타낼 전망”이라면서도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 이후 순발행 증가 등은 금리 하락세 둔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