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영섭 신임 KT대표가 넘어야 할 '4개의 산(山)'

김민구 기자 입력 : 2023.09.13 01:00 ㅣ 수정 : 2023.09.13 01:00

‘빈 카운터스’ 함정 빠져 미래 먹거리 소홀히 하면 안돼
‘경로의존성’의 치명적 유혹 이겨내야 성공
챗GPT 등 ‘거대 AI 혁명’ 흐름 거침없이 올라타야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정치적 외풍 물리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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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부국장/산업1부장 

 

[뉴스투데이=김민구 기자]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14년 전으로 돌아가자.

 

미국 자동차 업계 상징인 제너럴모터스(GM)는 2000년대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했다. 그러나 GM은 2009년 6월 1일 파산보호 신청(일종의 법정관리)을 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GM은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세계 자동차 업계 '살아있는 전설' 로버트 앤서니 루츠(Robert Anthony Lutz)를 GM 부회장으로 영입했지만 파산을 피하지는 못했다. 

 

루츠 부회장은 퇴임 후 그의 저서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에서 GM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 배경에는 비용을 줄이는 데에 중점을 두는 재무적 측면에만 매몰하는 경영방식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쉽게 설명하면 회사가 최고 품질 차량을 만드는데 주력하지 않고 수익성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됐다는 얘기다. 

 

그는 또 GM이 첨단 자동차 개발과 디자인 등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해 결국 세계 자동차 무대에서 독일과 일본 등에 밀리는 처지가 됐다고 꼬집었다.

 

빈 카운터스는 직역하면 ‘콩을 세는 사람’이다. 쉽게 설명하면 빈 카운터스는 기업의 ‘재무통(財務通)’이다. 뜻은 재무통이지만 제품 성능 극대화와 연구개발(R&D) 등 '큰 그림'을 보지 않고 ‘콩알 숫자나 세는’ 근시안적 경영을 선호하는 재무·회계 전문가를 냉소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러다 보니 재무통은 공격보다 수비에 급급하다. 이런 경영방식은 '야성적 충동'을 발휘해야 할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첨단 기술력과 소비자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돌아오면 빈 카운터스는 회전목마처럼 끊임없이 나타난다. 

 

국내 대표 통신기업 KT가 6개월 넘게 최고경영자(CEO) 공백을 겪은 후 마침내 새로운 수장을 맞이했다.  

 

공교롭게도 김영섭 신임 KT대표도 유명한 ‘재무통’이다. 그는 LG그룹에서 오랫동안 재무관리를 해온 재무 전문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새 사령탑이 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김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에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가 과거 LG CNS 대표 취임 후 실적 내리막을 걷던 부실 자회사를 대거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높인 적이 있어 KT에 새 둥지를 튼 그의 향후 경영방식은 지켜볼 일이다. 

 

KT는 지난 6개월간 회사 경영실적이 하락곡선을 그렸지만 전체 그림을 보면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KT는 지난해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으로 탈바꿈한 후 회사 매출을 25조 원대, 영업이익을 1조6901억 원대로 끌어올렸다. KT가 2002년 8월 민영화된 후 20년 만에 놀라운 성적표를 거머쥔 것이다. 또한 KT는 지난 3년간 시가총액이 10조 원대를 넘었다. KT 시총이 10조 원을 넘긴 것은 지난 2013년 6월 이후 9년 2개월 만이다.

 

전체 경영 상황이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CEO가 빈 카운터스 함정에 빠지면 회사 성장동력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김 대표가 간담회에서 KT를 비롯한 국내 통신사를 ‘파리, 모기’로 비유한 점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국내 통신업계가 통신 인프라 사업에만 안주해온 점을 지적한 냉혹한 자아성찰이다.

 

또한 기업이 한번 일정한 경로에 들어가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질타한 대목이다. 

 

국내 통신업체들이 통신사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첨단기술을 갖춘 글로벌 빅테크와 맞서 싸우는 모습이 마치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겁 없이 맞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 신세가 됐다는 얘기와 진배없다. 

 

통신업체가 ‘탈(脫)통신’을 외쳤지만 큰 진전 없이 경로의존성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이에 빅테크는 통신기업이 구축한 유무선 통신 인프라를 등에 업고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기존 인기 제품에만 집착하는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는 기업을 몰락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처방전’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명가(名家)’였던 모토로라가 레이저폰으로 세계를 향해 용트림하며 힘차게 포효했지만 그 이후 변변한 후속작 없이 경로의존성 함정에 빠져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잃은 게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는가.

 

세계 1위라는 승리의 샴페인에 흠뻑 취한 모토로라에 기술혁신은 빛바랜 휴지 조각이었다. ‘승자의 오만’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신임 김 대표가 인공지능(AI), 챗GPT 등 첨단기술이 속속 등장하는 시점에서 통신업계가 그동안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 활용하지 못했음을 반성한 점은 박수칠 만하다.  이제 KT는 기존 첨단 통신 인프라와 AI 기술을 접목한 게임체인저 기술을 내놔야 한다. 

 

KT에 꼬리표처럼 붙어있는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정치적 외풍(外風)을 차단하는 것도 김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소유분산기업은 ‘주인 없는 기업’이 아니다. 주주가 회사 주인이다.

 

KT는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2002년 민영화돼 현재 정부 주식이 한 주도 없다. 최대주주(국민연금) 지분율이 8%에 그친 가운데 외국인 지분율이 43%가 넘는 글로벌기업이다.

 

52개 계열사에 임직원 약 6만 명, 매출 25조 원에 이르는 거함(巨艦) KT가 엄연한 민간기업인데 정부와 국민연금이 이러쿵저러쿵하며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기업경영권 훼손이며 반(反)자본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과 국민연금이 민영화기업을 정권 전리품인 듯 쥐락펴락하는 황당함에 김 대표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김 대표가 뉴노멀 초불확실성 시대를 담대하게 헤쳐나가 KT를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ICT(정보통신기술)-초거대 AI기업으로 이끌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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