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올해 들어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자 국내 증권사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의 발행어음(단기금융) 판매 잔고가 급증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발행어음 판매가 가능한 증권사들의 연 수익률은 3%대 수준이고, 1년 만기로는 4%대에 달한다. 일부 특판 상품의 경우 5%대 금리까지 나온 만큼, 금리 경쟁력 있는 증권사 발행어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돈이 몰리는 것이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CMA 잔고는 71조1891억원으로 지난해 말(57억5036억원) 대비 20% 이상 증가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찍었다. 계좌 수도 연초 대비 200만개 이상 늘었다.
CMA는 증권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단기성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지급한다. 수시입출금이 가능하고 하루만 넣어도 이자를 받을 수 있어 증권사의 ‘파킹통장’으로 불린다.
CMA는 운용 대상에 따라 환매조건부채권(RP)형과 머니마켓펀드(MMF)형, 발행어음형 등이 있다. CMA에 자금이 몰리는 데에는 시장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심 약화가 반영된 탓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 CMA 계좌는 주식 대기자금으로 분류된다.
무엇보다 증권사들이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으나, 최근 증시가 상승 여력이 제한된 모습을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CMA 계좌에 돈을 보관 후 투자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테마주에 수급이 쏠리면서 주도주들이 횡보세를 걷고 있어서다.
여기에다 하반기 들어 중소형주를 중심으로 기업공개(IPO)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공모주 청약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많아진 것도 자금 증가에 한몫했다.
다음달 코스피시장 입성을 노리는 두산로보틱스 흥행 기대감과 서울보증보험(SGI서울보증), 신성에스티 등 '대어급'들의 상장을 앞두고 있어 대기자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메리츠증권은 두산로보틱스의 연간 영업이익 흑자전환 시기를 2025년으로 예상하면서 연간 영업이익률을 △2025년 8.7% △2026년 14.0% △2027년 28.6% 등으로 추정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어음형 CMA는 자유롭게 입출금하고 고금리 혜택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최근의 불안정한 증시를 관망하려는 개인 투자자들이라면 하루만 입금해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CMA를 선호 현상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사 CMA로 자금이 유입됐다는 것은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면서 "부동산이나 가상자산 시장이 부진하다 보니 단기로 움직이기 쉬운 CMA로 자금이 몰린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수익률이 높은 발행어음형 CMA에만 자금이 몰렸다면 올해는 증시 반등과 테마주 열풍에 증시 대기 자금이 늘어나면서 RP형과 MMF형, MMW형 모두 고르게 증가했다.
이 가운데 발행어음형은 지난 8일 기준 16조3967억원을 기록해, 올 들어 4조원 가까이 늘었다. 발행어음형 CMA 잔고는 지난 5월 31일 사상 처음으로 14조원을 돌파했고, 지난 8월 4일엔 15조원을 넘기는 등 증가세도 가팔랐다.
여기서 발행어음이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로 지정된 증권사만 가능하다. 이는 자체 신용으로 만기 1년 이내의 확정금리형으로 발행하고 약정한 원리금을 지급한다.
현재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4곳에서 발행어음형 CMA를 운용한다. 한국투자증권이 2017년 11월 처음으로 발행어음을 출시했고 △NH투자증권(2018년 7월) △KB증권(2019년 6월) △미래에셋증권(2021년 6월)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형 CMA 수익률은 3.60%로 4곳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NH투자증권은 연 수익률이 2.80%고, KB증권은 연 3.40%, 미래에셋증권은 연 3.55%다.
발행어음형은 금리가 가장 매력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제휴를 맺은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를 통해 가입하면 수익률이 1년 만기시 연 4.6%와 6개월 만기시 연 4.40%로 올라간다.
KB증권도 토스뱅크를 통해 특판 중인 발행어음 금리는 6개월 만기시 연 4.4%, 만기 후 6개월간 또 맡기면 수익률이 연 4.55%까지 높아진다. 지난 7일 출시 하루 만에 150억원을 끌어모았다.
CMA 잔고 증감을 증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오르내렸던 2021년 말 68조6294억원이던 CMA 잔고는 지난해 말 지수가 2,230선까지 곤두박질치면서 57조5036억원으로 축소됐다.
실제로 지난해 CMA는 증시 침체 속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은행, 저축은행과의 수신금리 경쟁에서 뒤처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셈이다. 그러다 올해 증시가 다시 활력을 되찾자 예비 투자자금이 CMA로 유입됐고, 잔고가 70조원을 웃돌았다.
다만 증권사 CMA는 인터넷은행 파킹통장과 달리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없다.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인당 최고 5000만원까지 보호되는 인터넷은행 파킹통장과 달리 원금 손실의 위험이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CMA 잔고는 발행어음형을 중심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사들의 자본 확충이 이어지는 만큼 자기자본 2배까지인 발행어음 발행 한도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IB 시장이 확대되면서 자기자본 규모 대비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자산이 늘어나고 있다“며 ”몸집이 불어날수록 할 수 있는 사업이 많아져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극은 더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