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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이슈 진단 (95)

본말이 전도된 제안서 평가 방식이 함정사업 수주 결정 왜곡의 ‘진짜’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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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3.08.31 13:47 ㅣ 수정 : 2023.08.31 14:10

평가 핵심인 기술능력 평가보다는 보안사고 등 가·감점 평가 결과로 수주 결정되는 경우 많아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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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 열린 ‘MADEX 2023’에서 HD현대중공업이 공개한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형상. HD현대중공업은 올해 연말까지 KDDX 기본설계를 마무리하고 내년에 시작될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을 준비 중이다. [사진=HD현대중공업]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HD현대중공업이 지난 14일 울산급 배치-Ⅲ 5, 6번함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이 선정된 것과 관련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HD현대중공업이 내건 가처분 신청 주요 사유는 방위사업청의 보안사고 감점 기준이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의 불이익(1.8점 감점)으로 작용해 기술능력 평가 등에서 1.6578점이 앞서고도 최종 평가에서 0.1422점 차이로 수주에 실패한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함정사업, 제안서 평가 결과에 불복해 법에 호소하는 사례 발생

 

해군 함정사업의 경쟁 입찰에서 수주에 고배를 마신 기업이 제안서 평가 결과에 불복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2020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도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기본설계 입찰 결과 HD현대중공업에 0.0565점의 근소한 차이로 수주에 실패하자 보안사고 감점이 적용되지 않았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안서 평가 결과에 불복해 법에 호소하는 사례가 일어나는 이유는 제안서 평가 시 무기체계 개발의 핵심 요소인 기술능력 평가 결과가 아니라 부가적 요소인 가·감점 평가 결과로 수주가 결정되는 ‘본말전도’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 이후 정립된 제안서 평가 방식이 함정사업 수주 결정을 왜곡시키는 ‘진짜’ 주범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제안서 평가는 기술능력 평가(80점), 비용 평가(20점), 가·감점 평가 등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 3가지 요소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평가 취지에 맞는 평가항목이 있어야 하고, 항목별 중요도를 고려한 배점이 정해져야 한다. 또 점수를 어떻게 줄 것인지에 대한 평가방법 및 기준이 있어야 하며, 평가를 전문성으로 수행할 역량을 가진 사람 즉 평가위원이 필요하다.

 

업무지침 상 표준배점 그대로 적용하고 대다수 항목 정성평가로 변경  

 

먼저 평가항목을 살펴보면 기술능력 평가의 경우 사업추진계획(40점)과 사업추진능력(40점)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송방원 우리방산연구회 회장에 따르면, 사업추진계획 14개 항목 중 9개 항목은 정부에서 정해놓은 절차와 방법에 관한 것이어서 업체별 제안서 내용에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항목까지 강제로 차등점수를 부여하게 만들어 평가 결과를 왜곡시키는 측면이 있다. 

 

평가항목별 배점 또한 사업별로 배점을 따로 정하도록 했으나 배점의 신뢰성 시비가 일자 2013년부터는 사업특성과 무관하게 제안서 평가 업무지침에 표준배점을 제시하고 이를 적용하고 있다. 사업특성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사업부서에서는 배점을 가감하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우려해 대부분 표준배점을 그대로 사용한다.

 

평가방법 및 기준의 경우, 현행 제안서 평가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혼합해 A, B, C, D 4개의 평가유형을 적용하고 있다. 일례로 B유형은 ‘정량평가가 가능한 절대평가’이고, C유형은 ‘정성평가가 가능한 상대평가’ 방식이다. 그런데 방위사업청은 공정성 시비가 우려되자 지난 2021년 신용평가, 과거 사업수행 성실도 등 일부를 제외한 모든 항목을 정성평가를 하도록 변경했다.

 

평가위원 전문성 부족하나 방위사업 전반에 전문성 가진 사람 드물어 

 

평가위원의 전문성 부족 또한 문제이다. 대다수 평가항목이 평가위원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정성평가를 함에 따라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나, 평가위원 자격 요건은 방위사업 관련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험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할 정도로 ‘관련 분야’에 대한 기준과 범위가 모호하다. 게다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있어도 광범위한 방위사업에 두루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드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평가위원에 선정됐다 하더라도 자신이 모르는 비전문 분야까지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며, 전문성 있는 분야조차도 2일 이내의 짧은 기간에 제안서에 있는 관련 기술의 제목과 요약내용만으로 평가해야 하므로 제대로 전문성을 발휘해 평가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내용도 잘 모르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렇듯 기술능력 평가에서 정확한 평가와 판단이 어렵고 강제 차등을 두게 요구하자 제안서의 문구와 편집 등 가독성이 점수에 영향을 미치게 됐고, 정량평가가 이뤄지는 비용평가도 참여업체가 모두 최저 금액으로 제안함에 따라 차이가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가·감점 평가 결과가 수주 여부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송 회장이 그의 최근 저서인 ‘3무의 K방산’에서 주장한 이런 내용에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기술점수 차이 크지 않아 가·감점 항목 줄이고 배점도 조정 필요 

 

일부 전문가들은 방위사업청이 작성하는 제안요청서(RFP)에 확보할 핵심기술을 식별해 포함함으로써 업체가 그 기술에 역점을 두고 제안하도록 유도하고 배점 비중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사업별 달성할 전략이 뚜렷하지 않아 모든 사업의 RFP가 유사한데, 특히 함정사업은 연구개발하는 선도함과 양산하는 후속함의 RFP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다수의 항목별 가중치를 적용하면 생각보다 기술점수 차이는 크지 않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비해 현재의 가·감점 평가의 배점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따라서 이 점수가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정부 정책을 제안서에 반영하는 항목을 가급적 줄이고 배점도 기술능력 평가의 차이를 고려해 적절히 조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야 업체들도 무기체계를 잘 만들 수 있는 기술능력 평가에 주안을 두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주의 당락이 결정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가 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면 기술 역량이 뛰어난 업체가 제안서 평가에서 우수하게 평가받아 사업을 수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업체의 기술력이 강화되고 한국의 방위산업은 발전한다. 지금처럼 기술력이 우수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선 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제안서의 기술능력 평가를 어떻게 수행할지 방위사업청의 ‘진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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