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상장사 ESG 평가] 통합 A등급인 기업은행, ‘금융사고’로 떨어진 지배구조 등급 상향이 과제
유한일 기자 입력 : 2023.06.21 02:18 ㅣ 수정 : 2023.06.21 02:18
환경·사회는 A+인데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로 지배구조는 B+로 강등돼 금융당국은 CEO의 내부통제 책임 강화 추진=기업은행의 지배구조 개선 방향
한국ESG기준원(KCGS)은 국내 1040개 상장회사들의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3가지 부문에 대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한 ESG 평가 및 등급을 연 4회 발표하고 있다. ESG등급은 재무적 가치를 넘어선 비재무적 가치를 측정하는 대표적 경영 지수로 자리잡고 있다. KCGS의 등급을 기초로 국내 주요기업들의 ESG 경영 실태를 취재·보도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내 3대 국책은행 중 하나인 IBK기업은행(은행장 김성태)은 ‘기본에 충실한 지속가능 은행’이라는 목표로 ESG 경영을 전개하고 있다. 설립 목적인 중소기업 금융 지원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녹색금융 등 친환경 정책에도 힘쓰고 있다. ESG 평가에서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사회(S)·환경(E) 분야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둬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지배구조(G) 분야 평가는 부진한 상황이다. 대규모 고객 피해를 야기한 금융사고가 발목을 잡았다. 금융당국은 최고경영자(CEO)의 내부통제 책임을 강화하는 금융권 지배구조 개혁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맞춰 기업은행은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으로 ESG 경영 재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환경분야 A+등급으로 한 단계 상승, 녹색금융 강화 등이 주효...사회 분야는 2년 연속 A+ 등급, 포용금융 선도가 높은 평가 이끌어
한국ESG기준원(KCGS·옛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2022년 연말 기준 기업은행의 통합 ESG 등급은 A 등급이다. 올해 분기별 평가에서도 A등급이 유지되고 있다. A는 S와 A+ 다음으로 높은 등급이며 ESG 모범규준이 제시한 지속가능 경영 체계를 적절히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분야별로 보면 환경(E)은 2021년 A등급에서 지난해에 A+ 등급으로 올랐다. 녹색금융 지원과 신재생에너지 투자, 온실가스 감축 등 기업은행이 펼친 친환경 중심의 금융 정책 효과가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회(S) 분야의 경우 2021년부터 2년 연속 A+ 등급을 유지했다. 사회공헌과 혁신성장 등 여러 성과가 있지만 포용금융·기술금융 선도가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중소기업의 자금줄 역할에 충실하면서 혁신기업 발굴을 위한 금융 지원·투자도 활발히 진행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환경·사회 분야 등급은 선제적 ESG 경영 고도화에 나선 민간 금융지주·은행과 비교해도 대등한 수준이다. 금융권 내 후발주자란 평가를 받았지만 해당 분야에서 ESG 경쟁력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 위험 거르지 못한 내부통제···배상 나섰지만 일부 피해 고객들 “만족 못 해”
다만 기업은행은 지배구조(G) 분야에서 금융사고 리스크를 피하지 못했다. 한국ESG기준원은 지난해 11월 기업은행의 지배구조 등급을 A에서 B+로 강등했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야기한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 관련 금융당국의 제재가 영향을 끼쳤다.
기업은행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의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US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를 각각 3612억원과 3180억원 규모로 팔았는데, 운용사가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2500억원이 넘는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2월 금융감독원의 제재 내용 공개안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상품 과정 및 투자 위험 등에 대한 설명을 누락했다. 자본시장법상 설명 의무 위반이다. 또 적정성의 원칙과 금융 거래 실명 확인 등의 의무도 위반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기업은행에 사모펀드 투자 중개 업무 정지 1개월과 과태료 47억1000만원 등의 제재를 내렸다. 지난달에는 디스커버리 펀드 공시 의무 위반으로 과징금 18억7570만원의 추가 제재도 확정됐다.
현재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 펀드 피해 보상을 진행 중이지만 판매 중단 4년, 제재 의결 1년이 지나도록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에 배상 비율을 투자 원금의 최대 80%로 권고했는데, 일부 피해 고객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 한국ESG기준원 관계자, "등급이 다시 상향하려면 체질적인 개선과 관찰의 기간이 필요"...기업은행 관계자, "입체적 내부통제 체계를 지속 고도화할 방침"
기업은행 입장에선 디스커버리 펀드 배상을 통한 고객 신뢰 회복과 내부통제 재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지배구조 등급을 떨어뜨렸던 금융사고 수습이 지지부진할 경우 등급 상향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ESG기준원은 다음 달 전체 평가사를 대상으로 ESG 등급을 평가·조정할 예정이다. 평가 때마다 기업은행처럼 내부통제 문제로 지배구조 등급이 떨어진 경우는 있지만, 다시 상향된 사례는 드물다. 사고 수습에서 나아가 본질적 개선 여부가 가시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등급 하향의 경우 즉각적인 반응이 확인되는데, 다시 상향할 정도가 되기 위해선 체질적인 개선과 관찰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지배구조 분야는 사건 발생 이면이 건전하지 않거나, 절차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며 시장에 큰 충격을 준 만큼 내부통제 문제를 간과할 수 없고 충분한 팔로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 펀드 피해 고객들과 배상 절차를 이어가는 한편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지배구조 재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실무진 중심의 ESG 등급 제고 노력은 한계가 있는 만큼 경영진·이사회 등 조직 전체의 관행 개선이 요구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상품·서비스는 물론 제도와 핵심성과지표(KPI) 등 경영 체계를 철저히 점검할 방침”이라며 “금융사고를 없애기 위해 사람·절차·기술의 '입체적 내부통제 체계'를 지속 고도화하고, 발생 가능성과 발생 시 파급 영향을 종합 감안해 최적의 내부통제 체계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