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증권가 채권 돌려막기 의혹…당국 '묵인' 사태 키웠나

임종우 기자 입력 : 2023.06.14 06:58 ㅣ 수정 : 2023.06.14 06:58

SK證, 채권 신탁 상품 손실 보전 진행 중
KB證, 900억원 규모 손실 감추기 논란
금감원 "위법 사항 확인 시에 엄정 조치"
'돌려막기' 불법 딱지 붙나…"당국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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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프리픽]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증권사들이 자사 금융상품의 손실을 메꾸기 위해 관행적으로 진행해 오던 '채권 돌려막기' 의혹이 연이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돌려막기는 주로 채권형 랩어카운트나 신탁 상품에서 이뤄졌는데,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한 검사에 착수하고 불건전한 채권거래 관행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동안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이를 묵인해오면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증권이 원금 보장이 안 되는 채권형 신탁 상품에 투자한 일부 법인 고객들만 대상으로 손실을 보전해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SK증권은 지난 3월 자사 채권형 신탁에 가입한 법인 A사가 투자 자산 평가손실 및 환매 연기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자 신탁 자산에서 발생한 평가손실분에 상응하는 수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투자 손실 보전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SK증권은 이번 절차가 법적 자문을 얻은 뒤에 진행하는 만큼 법에 저촉되는 사안이 없다고 반박했다.

 

SK증권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는 '손실 보전'을 한 적은 없으며,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사전에 법무법인과 법률적 검토를 거친 후 합의했다"고 해명했다.

 

앞서 SK증권은 일부 단기 상품으로 유입된 고객 자금을 장기채에 투자하는 '만기 불일치' 운용을 실시했는데, 그로 인해 발생한 평가손실에 따른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지며 나타난 손실분을 메꿔주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가 상품 계약 기간보다 긴 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불일치 운용 방식을 활용할 경우 판매한 상품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 금리 급등에 따라 장기채 가격 폭락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KB증권이 금융상품의 평가손실을 숨기고자 하나증권에 있는 KB증권 신탁 계정을 이용해 자사 법인 고객 계좌에 있던 장기채를 평가손실 이전 장부가로 사들인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심지어는 KB증권이 900억원에 이르는 평가손실을 감추기 위해 하나증권과 불법적인 자전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시되기도 했다. 자전거래란 증권사 등 금융사가 운용하는 펀드나 계정 간의 자금 거래를 말한다.

 

이 같은 지적에 증권사들은 이미 계약서 상에도 명시된 것으로 만기 불일치 전략이 위법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SK증권 관계자는 "해당 상품의 운용방식 등에 대해 신탁계약서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며 "환매가 어려웠을 때 왜 환매를 못해주는지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고, 만기 연장을 할 때 필요한 사항들이 있는데 이 역시 미흡했다는 점도 문제였다"고 말했다.

 

KB증권도 의혹이 제기된 당일 입장문을 내고 "자본시장법에는 수익자가 동일인인 경우의 계좌 간 거래는 자전거래를 인정하고 있다"며 "새로운 고객의 자금이 입금되는 경우에는 직전 고객의 자산을 이전하는 것이 아닌 운용 자산을 시장에서 매수해 대응하며, 그 외 만기가 도래하거나 환매를 요청하는 경우 고객 보유 자산을 매각해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금감원은 이 같은 만기 불일치 전략이 불건전한 영업관행이라고 평가하며 지난달부터 증권사들의 랩어카운트 및 신탁 시장에 대해 검사하고 있다. 앞서 하나증권과 KB증권 2개사의 검사를 마친 금감원은 향후 검사 대상 증권사를 순차적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만기 불일치를 통해 과도한 목표수익률을 제시하게 되면 자금시장 경색 및 대규모 계약해지 발생 시 환매 대응을 위해 연계거래 등 불법·편법적인 방법으로 편입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며 "이는 법상 금지하고 있는 고유 재산과 랩·신탁재산 간 거래, 손실보전 및 이익보장 등에 해당할 소지가 있어 검사를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검사 결과 확인된 위법 사항에 대해서는 엄정 조치할 것"이라며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을 근절하고 시장 질서를 확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채권 돌려막기의 불법 여부를 명확히 가리기 어려운 만큼, 금융당국의 최종 결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불법적인 자전거래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결국 사건의 쟁점은 채권 돌려막기의 불법 여부를 가리는 것"이라며 "그동안 업계에서 관행으로 여겨졌던 만큼, 불법으로 판정받는 순간 상당한 수의 증권사들에서 관련 문제가 터져 나올 가능성을 유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긴 시간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채권 돌려막기 행태를 금융당국이 그동안 지적하지 않으면서 뒤늦은 대처를 펼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금융당국이 최근 돌려막기에 대해 예전보다 강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를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예전부터 사실상 묵인돼 오던 영업행위가 이렇게 거론된다는 것은 당국이 과거와 다른 심각성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실제로 처벌하고 싶다면 이미 예전부터 만성적으로 진행되던 행위와 지금의 행위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규명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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