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3.02.21 05:00 ㅣ 수정 : 2023.02.21 05:00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개편안' 소비자 권익 침해 논란으로 도마 위 개편안, 운항거리에 따른 공제 기준 적용해 단거리 탑승객에 초점 장거리 여행때 마일리지 혜택 누리려는 고객들 개편안에 불만 커져 개편안, 연기 혹은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 커져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오는 4월 시행될 예정인 대한항공 마일리지(보너스 항공권) 개편안, 이른바 ‘스카이패스 개편안’을 두고 국민 원성이 자자하다.
공제율 변동을 골자로 한 이번 개편안이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논란을 일으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소비자 불만이 폭발한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이 제동에 걸렸다.
이에 따라 업계는 대한항공이 개편안을 예정대로 도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개편안 연기설(說)과 함께 원점에서 재논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연기나 재논의 등에 관한 구체적 일정이나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지만 여론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 마일리지 공제율 기준 ‘지역→운항거리’ 개편
21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지금껏 마일리지 공제 기준은 ‘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현재 국내선 1개와 동북아, 동남아, 서남아, 미주·구주·대양주 등 4개 국제선 지역에 마일리지를 공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시행 계획 중인 개편안은 ‘운항거리’에 비례한 공제 기준을 적용한다. 운항거리에 비례해 국내선 1개와 국제선 10개로 기준을 기존보다 더욱 세분화해 공제량을 차별화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공제기준을 변경해 거리가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높았던 마일리지 공제율은 내리고 거리가 멀지만 상대적으로 적었던 마일리지 공제율을 현실화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마일리지 항공권을 이용하면 인천~후쿠오카 노선 일반석 기준 평수기(비성수기) 편도 1만5000마일이 소요된다.
그러나 개편안이 도입되면 1만마일이면 충분하다.
이에 따라 인천~상하이 노선은 1만5000마일에서 1만2500마일로 줄어든다. 미주지역으로 분류되는 하와이는 기존 3만5000마일에서 3만 2500마일로 축소된다.
반면 동남아시아 노선 가운데 긴 노선으로 분류되는 싱가포르는 2만마일에서 2만2500마일로 상향 조정된다. 또한 장거리 노선 미국 뉴욕은 3만5000마일에서 4만5000마일, 프랑스 파리는 3만5000마일에서 4만마일로 각극 늘어난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개편안은 단거리 탑승객에 초점을 맞춘 데 따른 것이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마일리지 항공권 구매 고객 가운데 국내선 이용 고객 비중이 50%이며 일본, 중국, 동남아 등 국제선 중·단거리 고객까지 포함하면 76%에 이른다.
그러나 일반석 장거리 항공권 구매가 가능한 7만 마일 보유 고객은 전체 회원의 4%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장거리 노선 공제율이 오르고 단거리 노선 공제율이 내려가면 대다수 회원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외항사 대부분이 운항거리에 비례한 공제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개편 공제율이 외항사 대비 높지 않은 수준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러나 소비자 생각은 다르다.
티켓 가격이 비싼 장거리 노선에서 사용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마일리지를 쌓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단거리는 마일리지 사용이 아니더라도 LCC(저비용항공사)라는 대안이 있어 대한항공 주장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그동안 이런 이유로 마일리지를 쌓아온 소비자에게도 개편안을 소급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불만이 커지는 양상이다.
또한 개편안과 맞물려 마일리지 좌석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도 반발을 사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권고하는 항공사에 마일리지 좌석 비율은 편당 전체 좌석의 5% 수준이다.
대한항공은 권고사항을 준수하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은 평균 10%, 또는 좌석이 많이 남으면 40% 이상 늘려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국토부 권고안에 비해 더 많은 좌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지만 인기 노선의 마일리지 좌석은 금방 예약이 마감돼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따라 소비자로서는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혜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활용이 많은 중·단거리 혜택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장거리 노선을 염두에 둔 소비자로서는 좌석 부족에 설상가상으로 마일리지 차감폭까지 늘어나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온 마일리지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 정부·정치권까지 나서 제동…‘진퇴양난’ 놓인 대한항공
개편안은 2019년 12월에 발표돼 애초 2021년 4월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해 시행 시기가 연기됐으며 그 시점이 오는 4월이다.
개편안이 발표된 그 이듬해 1월 소비자단체는 약관 내용의 불공정 여부를 심사해 달라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대한항공을 고발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내부에서 4월 이전까지 약관의 공정성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힌 게 전부다.
그리고 최근 개편안 시행 예정일까지 불과 한달여밖에 남지 않자 소비자 불만이 더욱 커지면서 정부와 정치권까지 가세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이 낸 혈세로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받고 국책은행을 통한 긴급 자금을 지원받은 것을 잊은 채 소비자를 우롱하면 되겠느냐”며 대한항공을 저격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도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는 못할망정 국민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놨다”며 힐난했다.
원 장관은 지난 19일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대항항공은 코로나19 유행기에 고용유지지원금과 국책금융으로 국민 성원 속에 생존을 이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살아남게 해줘 감사하다는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는 못할망정 불만을 사는 대책을 내놨다”며 “폭발적 항공 수요가 있을 때 수익 구조를 개선하려는 건 이해하지만 마일리지는 경쟁 체제 속에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약속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대한항공이 자신 이익에만 진심이고 소비자에 대한 감사는 말뿐이라는 불만을 원천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자 대한항공은 전체 좌석의 5% 수준인 마일리지 사용 보너스 항공권 좌석 비중을 2배로 늘리고 올해 성수기 뉴욕·로스앤젤레스·파리 노선에서 마일리지 좌석이 절반 이상인 특별기 100여편을 한시적으로 운항하겠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하지만 불만 여론이 좀처럼 사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예정대로 개편안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일리지 개편안 연기와 함께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은 여론 수렴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개편에 관한 구체적 계획이나 일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마일리지와 관련해 제기되는 고객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대책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20년 전에도 마일리지 개편안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대한항공은 2003년 마일리지 항공권을 발급에 공제하는 마일리지를 늘리는 제도 개정을 추진했다.
이를 두고 마일리지 혜택을 축소하려 한다는 반발이 거세졌다. 결국 공정위가 개입해 시정명령 위반에 따른 검찰 고발까지 오르내렸다. 이에 대한항공이 수정안을 제출해 사건은 일단락됐다.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 논란 반복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사용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마일리지는 카드사 제휴 등을 통해 자사 항공사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며 “마일리지 적립과 사용량 증가는 결국 항공사 입장에서 부채가 되고 차곡차곡 쌓아 사용하려 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일리지 항공권이 과연 (항공사와 소비자 양측에) 메리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항공편을 이용한 만큼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만 되면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한항공이 제시한 마일리지 좌석 수 확대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