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은행들 관치라도 유리하면 침묵, 불리하면 반발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은행권에선 관치(官治) 금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펼치는 각종 정책이 은행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지나친 시장 개입이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과적으로 잘 시행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금융 지원 연장이나 예대금리차 공시 도입 등의 과정에서도 은행들의 반발은 거셌다. 공공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엄연한 민간 기업인 은행에 대한 과도한 ‘팔 비틀기’라는 것이다.
취약차주에 대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은행들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실적 감소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여·수신 운용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대출 계약 기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출금리 인하나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시장 왜곡과 경쟁 과열 등을 꼬집었다. 시장에서 정한 가격(금리)이 있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고객 피해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번 정부 들어 은행을 향한 금융당국의 메시지가 거칠어졌다는 느낌이 강한 건 사실이다. 표면적으로는 동참 당부지만 사실상 압박 수준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크다. 등 떠밀리 듯 정책에 참여하는 은행 입장에선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다만 은행들의 선택적 반발에 대해선 배신감이 든다. 얼마 전 금융당국의 정기예금 금리 인상 자제령에는 군말 없이 따랐던 은행들이다. 정기예금 금리 상승이 코픽스(COFIX)를 자극해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시장 개입 논란에 대해선 침묵했다.
은행들은 정기예금 금리 동결로 고객 이탈 등 부정적 효과를 감수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자 지출이 줄어들며 수익성이 제고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러는 사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자를 받기 원하는 고객들의 실망감도 배가됐다.
올해 들어 시작된 기준금리 연쇄 인상에 은행들은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연간 순이익은 역대 최대 기록 경신이 확실시된다. 대출 자산 성장과 금리 상승이 맞물리면서 이자 이익이 대폭 늘어난 결과다.
관치는 금융권에서 뿌리 뽑아야 할 악습으로 꼽힌다. 다만 매번 비용이 드는 정책에 대해서만 관치 금융을 운운하는 건 은행들의 인식을 의심케 한다. 실적 감소 우려를 시장 질서 왜곡으로 포장한 게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차주들에게 추운 겨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금리 상승에 대출금리는 계속 오르고, 이자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이미 주변에선 올해에만 연간 대출 이자가 100만원 이상 늘었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
경기 불확실성 확대 속 차주들을 지탱하는 것 역시 은행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일명 ‘착한 관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앞으로 은행들이 일관성 있는 태도로 고객 신뢰 제고와 포용 금융 활성화에 앞장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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