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청구 간소화' 반대하던 의료계, 입장 선회…중계기관 두고 보험업계와 입장차
의료계, "심평원 등 공공기관 아닌 민간 영역서 중계 담당해야"
보험업계 "심평원, 이미 동네 의원‧약국까지 시스템 마련돼 적절"
윤창현 의원, 당국‧의협‧보험업계‧소비자단체 등 '8자 협의체' 제안
중계기관 두고 이견 좁혀지지 않는 상황…방안 도출 시일 걸릴 듯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입장 차로 지지부진하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논의가 의료계의 조건부 찬성 선회로 진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중계기관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어 제도 도입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 실손비서 도입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에서 윤 의원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인 '실손비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금융행정 최고의 혁신과제"라고 말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 가입자가 병원에 보험금 청구를 위임하고 병원에서 보험사에 필요한 서류 등을 전송해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환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해 필요 서류들을 발급받아야 하는 절차를 전산으로 바꿔 간소화하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물론 보험 가입자들은 지속적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요구해왔다. 국민권익위원회도 2009년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보험업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실손보험 청구 중계기관으로 지정해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을 요구해왔고, 발의된 법안도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정해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험업계는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간 업체가 중계기관이 되면 수익성 등에 따라 변동성이 커 사업 안정성이 낮고, 유지‧관리 비용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개인의 의료 선택권을 제한하고 재산권 침해, 개인정보유출 등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보험업계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정보가 심평원으로 집합되면 심평원이 이를 분석해 비급여 항목에 측정 권한을 행사하는 근거로 활용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에서 의료계가 조건부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진전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토론회에서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인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해 보험사로 강제 청구하는 내용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공공기관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하지 않는 민간 주도 형태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이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업체가 있어 청구 간소화 라인이 구축돼 있다"면서 "민간 주도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의료계가 조건부 찬성 입장을 보였지만 중계기관 선정에 대해 의료계와 이견이 있는 만큼 결론 도출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 정치권 등에서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동네 의원(1차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등 소액청구건에 대한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동네 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가입자들이 청구액이 적고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반면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청구액이 커 가입자 대부분이 보험금을 청구한다.
현재 핀테크 등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는 간소화 서비스는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동네 의원까지 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수익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민간에서 중계를 맡게 되면 수익성 등을 이유로 의원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될 것"이라며 "심평원은 이미 동네 의원이나 약국까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윤 의원은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의사협회, 병원협회, 소비자단체,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가 참여하는 8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 자체에는 찬성 입장을 보인 만큼 당사자가 참여해 해법을 도출하겠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의료계와 보험업계, 소비자단체가 직접 논의를 진행하고 합의 내용을 의회가 받아들여 법안으로 만드는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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