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선(541)] 살인적 물가상승에 30년 만에 100엔 가격표 떼버리는 100엔 숍들
정승원 기자 입력 : 2022.09.30 11:00 ㅣ 수정 : 2022.09.30 11:00
역대급 엔화약세로 인한 기록적 물가상승에 100엔 숍들 위기감 엄습, 정체성 상실이라는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100엔 가격표 포기하는 업체들 증가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일본 총무성은 올해 8월 소비자 물가지수가 전년 동월대비 2.8% 급등하며 버블 붕괴 직후인 1991년 9월 이후 30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전기료가 21.5%, 도시가스가 26.4% 급등하며 물가상승을 주도했는데 특히 도시가스는 무려 81년 3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갱신했을 정도로 일본의 물가상승 추이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100엔 숍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특히나 남다르다.
동전 한 닢인 단돈 100엔이란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물건들을 판매하며 일본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지만 충격에 가까운 물가상승에 상품가격을 100엔으로 유지하는데 이미 한계가 왔고 그렇다고 100엔이라는 가격표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100엔 숍 업계는 다이소(大創産業), 세리아(セリア), 캔두(キャンドゥ), 왓츠(ワッツ)의 4개 기업이 연간 9000억 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기타 기업들까지 합치면 연간 약 1조 엔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먼저 업계 1위인 다이소는 일본 내에 3790개의 100엔 숍과 252개의 300엔 숍을 운영하는 한편 해외 25개 국가와 지역에 2281개의 점포를 운영하며 총 6300개 이상의 점포를 거느린 업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일본 내에만 1866개의 점포를 운영 중인 세리아는 업계 2위이지만 점포당 이익률은 다이소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고 3위 캔두는 올해 1월에 초대형 유통그룹인 이온(イオン)에 편입되었고 4위 왓츠 역시 동종 업계의 온츠(音通)를 매수합병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들 기업 간의 차이점이라면 한국에도 진출해있는 다이소의 경우는 해외매출의 비중이 높아 비교적 영향이 적은 편이지만 나머지 3개 기업은 완전한 내수형 기업이기 때문에 수입원가와 물류비의 상승, 엔저 영향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이다.
한 예로 작년 캔두와 왓츠의 영업이익률은 각 1.3%, 3.3%를 기록하며 상당히 낮았음에도 올해 당기순이익은 0.3%를 기록하며 사실상 적자 직전에 내몰려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경험해보지 못한 원가상승을 경험한 100엔 숍들은 100엔 보다 비싼 상품의 비중을 늘려가며 조금이라도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100엔 숍의 탈(脱) 100엔화를 부르게 되었다.
앞으로도 모든 상품을 100엔으로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곳은 세리아가 유일하고 다이소를 포함한 나머지 기업들은 100엔 상품을 미끼로 삼아 더 비싼 상품들을 주력으로 판매하며 사실상 100엔 숍이 아닌 저가(低價) 잡화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100엔으로 일본 서민들을 지탱해온 다른 업계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전초밥의 대표주자인 쿠라즈시(くら寿司)는 지난 7월 8일부터 한 접시에 100엔(세금별도)이었던 메뉴 수를 70가지에서 60가지로 줄이고 200엔 메뉴 19가지를 추가한다고 발표하였고 업계 1위인 스시로(スシロー) 역시 1984년 창업 이래 계속 100엔으로 유지해오던 기본 초밥의 가격(교외 기준)을 세금포함 120엔으로 첫 인상했다.
일본의 대표 편의점 세븐일레븐(セブン‐イレブン)도 7월부터 레귤러사이즈의 즉석커피를 100엔에서 110엔으로 인상했고 약속이나 한 듯이 로손(ローソン)이 뒤이어 110엔으로 커피가격을 올리면서 직장인들의 지갑사정을 덜어주던 100엔 커피라는 표현도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국가를 막론하는 세계적인 물가상승은 누구도 탓할 수야 없겠지만 100엔 한 닢이 주던 위안마저 잃어버린 일본인들의 오늘은 조금 더 우울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