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에 올겨울 천연가스 수요 15% 감축으로 대응 (하)
천연가스는 장기적으로 원전과 더불어 탄소중립을 위한 징검다리 에너지로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따라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중기적으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가장 야심찬 탄소중립의 도정을 선포하여 실천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에너지 시장의 민영화에 따른 수익성 확보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천연가스 장기계약을 단기계약으로 대부분 전환함으로써 2020년 이후 코로나 글로벌 팬데믹의 충격을 가장 많이 받은데 이어 이번 러시아-우크라 사태에 따른 영향이 이를 가중시키고 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와 중국 및 일본 역시 천연가스 의존도가 막대한 상황에서 유럽의 상황 및 대응에 이어 중국과 일본의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제시하는 시사점을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곽대종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러시아는 6월 중순 이후 노르트스트림1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을 독일에는 40%, 이탈리아와 슬로바키아에는 각각 50%를 감소시켰으며 프랑스에 대한 공급은 전면 중단하였다.
이에 더하여 지난 6월 미국 LNG 수출기업인 프리포트의 텍사스 시설이 폭발 사고로 가동이 일시 중단됨에 따라 유럽에서는 이미 지난해 초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7배 가까이 급등한데 더해 다시 60% 이상 올랐다.
•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수리로 유럽행 천연가스 급감
당초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공급 급감은 표면적으로는 독일 측에 수리를 맡긴 노르트스트림1의 가스관 터빈을 제때 반환받지 못한 데 따른 것이었다.
즉 러시아 가즈프롬(Gazprom)이 독일 지멘스 에너지에 터빈 수리를 요청했고 지멘스 에너지는 다시 캐나다 업체에 수리를 의뢰했는데 캐나다 정부가 대 러시아 경제제재를 이유로 수리가 끝난 터빈을 독일로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스관 수리를 이유로 열흘 동안 전면 중단되었다가 7월 22일 다시 공급을 재개했지만 3일 만에 공급량을 다시 기존의 20%로 줄이겠다고 통보하는 등 러시아의 행보는 매우 불확실하므로 언제 다시 공급 부족에 빠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 러시아, 대 러시아 제재에도 천연가스 전략무기화에 주력
러시아-우크라 사태에 따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의 제재는 러시아로 하여금 막대한 자원을 보유한 국가가 결국 갑의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노르트스트림1 수리 지연에서도 아쉬운 쪽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경제 제재로 인해 이전에 비해 적게 팔더라도 중국 및 인도 등의 대체소비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비싼 가격에 팔 수도 있어 결국 수입은 더 많아질 수 있다. 최근 러시아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이를 반증한다. 또한 러시아의 가즈프롬은 이미 사우디의 세계최대 정유회사 아람코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회사로 부상하였다.
이에 더해 러시아는 자국의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 의회(국가두마 State Duma, 일종의 하원)는 6월 21 외국기업의 자원개발 금지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당장 쉘, 미쓰이 및 미쓰비시와 같은 기업들이 사할린2 광구에서 철수하거나 해당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다.
•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 가장 높은 독일을 필두로 전유럽 산업에 큰 충격
최근 독일 외교부의 공개회의에서 에너지 위기와 푸틴 대통령이 언급된 직후 갑자기 실내의 전등이 꺼진 유튜브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단지 우연한 사고라고하기에는 현재의 천연가스 수급 위기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전유럽은 석유화학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천연가스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플라스틱 등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소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전역에 각종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독일의 천연가스 기반 소재 산업이 위기에 빠질 경우 유럽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news의 추정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독일에서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될 때 생산감소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은 유리 및 유리제품(-47%), 제선 및 제강(-34%), 세라믹 등(32.5%), 음식료품(-32%), 인쇄‧출판(31.4%) 및 화학(-31.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 EU, 금년 여름부터 내년 3월까지 천연가스 수요 15% 감축 선언
이러한 러시아의 행태에 맞서 EU 이사회는 7월 26일,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천연가스 소비를 15% 감축시키려는 EU 집행위원회의 제안을 수락했다.
물론 당장 감축 의무 적용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아니고, 적용 시기와 대상국에 상당한 예외를 설정하고 현 상태에서는 소비 감축을 각국 자율에 맡기되 천연가스 완전 공급 중단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의무화를 발동하기로 하였다.
일단 러시아 가스관으로부터 독립한 아일랜드나 몰타 등은 면제 대상이며 당초 EU 집행위 안은 비상사태 결정을 집행위 소관에 두려 했으나 그리스, 스페인 및 포르투갈 등 일부 회원국들의 반발로 절대 과반수 동의로 수정되었다.
• 비축량 부족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장기간이 소요될 전망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지난 5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REPowerEU」를 선언한 바 있으며 이미 러시아-우크라 사태의 발발 이후 북부 아프리카 및 동지중해 등으로 다각적으로 러시아 천연가스 대체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각국의 이해 조정 및 건설 기간 등의 이유로 단기간에 해소될 수는 없다. 이는 러시아로부터의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가 LNG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 따라 의존도가 이미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축시설의 경우 터키와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의 LNG저장소 총용량이 2530억m3(세제곱미터)인데 반해 유럽과 연계가 되어 있지 않은 스페인 및 포르투갈이 각각 680억m3 및 80억m3에 달할 뿐만 아니라 자체 수요 충당에도 급급한 터키가 360억m3이며 영국도 490억m3에 달하여 사실상 절반 이상이므로 나머지 물량만으로 EU가맹국이 부족분을 서로 돌려막을 수는 없는 구조이다.
우리나라도 국내 천연가스 도입물량 중 중장기 물량과 현물 비중은 8:2로 현물가격이 상승할 경우 가스 및 전기요금의 인상은 불가피하므로 천연가스 수급 안정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