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난에 디스플레이 업계 인재 뺏길까 ‘전전긍긍’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 파장이 디스플레이 업계로 번지고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업계 인력난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닌 만성질환과 같다. 반도체 산업은 나날이 커지는데 일할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분야 인재 육성을 국책과제로 삼는 등 업계 위기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 종사자와 디스플레이 산업 종사자 전공이 전자공학·신소재공학·기계공학 등으로 중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디스플레이 업계는 신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보이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디스플레이 또한 반도체 못지않게 전문 인력이 태부족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 산업에 인재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중국 기업이 고액 연봉을 미끼로 국내 디스플레이 인재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인력난 해소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 관심 잃고, 인력도 뺏기고
디스플레이는 지난 2004년부터 17년 동안 한국에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걸어 준 효자 산업이다.
그러나 싼값으로 승부수를 둔 중국 기업 기세에 눌린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왕좌 자리를 내주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디스플레이 산업은 반도체, 배터리 등 다른 첨단산업에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첨단산업특별법)’에서 디스플레이는 제외됐다.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첨단기술 선정에서도 유력한 후보인 반도체·배터리·백신 등에 밀려 후순위다.
최근에는 반도체 인력난 후폭풍으로 ‘탈(脫)디스플레이’ 현상까지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들과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은 1년에 인력 3000여명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갈수록 중요해지는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석·박사 인력 3500명을 배출해 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일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10년간 누적 부족 인력이 3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핵심 산업 반도체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들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나서 인재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AI(인공지능) 반도체 첨단기술 연구에 향후 5년간 1조 200억원 투입하고 같은 기간 전문인력을 7000명 이상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 디스플레이 인력을 반도체 인력으로 전환하는 대책까지 내놓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사업 중단을 결정한 TV용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부 인력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으로 전환배치를 계획 중이다.
예상 규모는 300여명 안팎으로 희망자를 대상으로 면접 등 선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20년 8월과 12월에도 각각 200~400여명의 인력을 삼성전자 DS부문으로 전환배치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종사자들 대부분이 전자·화학·기계공학 전공자들이며 디스플레이는 ‘빛을 내는 반도체’라고 불릴 만큼 두 산업 기초공정은 매우 유사하다. 이에 따라 반도체 분야에서 디스플레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안팎으로 전폭적인 지원이 끊이지 않자 디스플레이 인재들이 반도체 업계로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한국 디스플레이산업 위상을 지키기 위해 핵심인력 확보가 매우 중요한 열쇠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신규 공급 인력 확보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이하 디스플레이협회)가 공개한 디스플레이산업 인력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구인활동을 통해 채용하고자 했던 산업인력은 2989명이다. 이 가운데 약 92.8%인 2775명을 채용했지만 1년 이내 조기 퇴사한 인원이 956명이다. 조기 퇴사율이 34.4%에 이른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본 공정이 유사하다 보니 디스플레이 종사자들이 반도체 공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며 “최근 업계에서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이 축소되고 있고 국가에서도 반도체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고 처우도 반도체 분야가 더 좋다 보니 이직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 직접 인재 발굴 나선 디스플레이 업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디스플레이 업계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상시 채용의 문까지 열어두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와의 협력의 끈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디스플레이협회는 구인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디스플레이 기업에 우수 인재 확보 기회를 제공하는 ‘디스플레이 잡(Job) 매칭’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서울 및 수도권, 디스플레이산업단지 인접 대학들과 손잡고 디스플레이 유관학과 및 디스플레이 관심 이공계 출신 인력 정보를 매칭시스템에 집적화할 계획이다. 또한 기업들이 우수인재 정보를 상시 열람할 수 있도록 열어둘 방침이다.
한편 오는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 간 서울 코엑스에서 ‘디스플레이 채용박람회’가 개최한다.
정부 인력양성사업을 통해 디스플레이 산업 특화 커리큘럼을 수료한 석박 인력에 대해 기업이 사전에 구직 인력 역량을 검토 후 상호 희망하면 매칭해 1:1 심층 면접을 실시한다.
이동욱 디스플레이협회 상근부회장은 “구인난으로 큰 어려움에 처한 소부장 기업에게 인재 확보 지원을 위해 준비한 온·오프라인 매칭의 장(場)이 기업 인재확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이어 “산업 간 인력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을 감안해 앞으로 우리 디스플레이 업계로 우수 인재가 유입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구인난 해소 지원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일단 패널 기업들은 (인력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시급한 건 소부장 기업들”이라며 “정부와 함께 계층별 인력 프로그램을 고민 중이다. 석·박사 인력 양성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고 실제 시행에 옮긴 사업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학사 교육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