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듯말듯한 ‘풀필먼트(Fulfillment)’의 핵심키워드
‘알파고’의 바둑대결로 AI가 주목받게 되었듯이 2021년 3월 쿠팡의 뉴욕증권거래소 입성(86조원 시가총액 인정)은 일반 국민들의 물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더욱이 의아했던 점은 당시 쿠팡의 적자 규모가 4조원에 달했다는 점이다. 한편 쿠팡 상장 1년 전 ‘우아한형제들’의 배민을 독일계 DH(딜리버리 히어로)가 4조7500억원에 인수하는 사건도 있었다. 창고와 트럭으로 대변되던 3D업종 물류가 핫한 주목을 받게 된 다이나믹스(Dynamics, 역동성)는 과연 무엇이고, 그렇다면 미래에도 물류는 계속 주목받는 산업으로 남게 될까? 역동적인 물류의 미래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승한 경기대 SW경영대학 겸직교수] “‘풀필먼트(fulfillment)’가 어떤 뜻인가요?”
최근 만난 투자전문 운용사 대표의 질문이었다. 최근 ‘핫’한 분야인 물류 투자 검토를 시작하면서 흔히 듣는 용어이긴 한데 명확한 정의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하긴 모든 사람이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나만 모른다고 하기는 애매한 나름 익숙한 영어 단어가 ‘풀필먼트’이긴 하다.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를 찾다보니 분명한 것은 풀필먼트를 유명(?)하게 만든 시초가 아마존(Amazon)의 FBA(Fulfillment By Amazon)란 서비스라는 것에 이견은 없는 듯하다. 또한 이커머스의 등장에 따른 진화된 창고 혹은 물류센터 서비스를 지칭한다는 것에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풀필먼트는 단지 온디맨드의 시대, 고객의 복잡한 요구를 효율적으로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창고에 새로운 역할과 이름을 덧씌운 용어라는 정도로 재해석된 용어일 뿐일까?
이렇듯 유행에 따른 단순 패션용어가 아니라면 과연 풀필먼트를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엇일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라면 기존 3PL과의 차이는?
‘풀필먼트’를 물류 전문업체가 고객의 전(全) 주문처리 과정을 대행해주는 서비스로 상품입고, 보관, 포장, 운송, 반품처리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풀필먼트서비스 프로세스>
위키피디아의 Order Fulfillment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 프로세스를 지칭하기에 풀필먼트만큼 적당한 단어는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기존에도 3PL(3자물류) 서비스업체들은 ‘일괄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풀필먼트는 단지 이커머스 환경의 '온디맨드 3PL 서비스'를 줄여서 지칭하는 용어일까?
• Contract Logistics vs. 풀필먼트
3PL이란 용어가 등장하고, 비슷하게 사용되었던 contract logistics(C/L)라는 용어가 있었다.
이름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C/L은 화주와 3PL업체 간의 ‘계약’을 강조한 용어이고, 특히 장기(long- term) 계약에 기반한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이런 이유로 예전 국내 대형 3PL사들 내부조직에 ‘C/L사업부’라는 명칭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물류센터 혹은 창고운영을 전담하는 사업부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도 흥미로운 이유가 있는데 창고 혹은 물류센터의 3PL 운영계약은 적어도 2년 혹은 2+1년(2년 후 1년 자동연장을 의미) 같은 장기계약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창고운영에는 초기 장비구입/설치 및 용역확보 등 셋업(Setup)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3PL 입장에서는 장기계약이 불가피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기본 계약서에 더해서 SLA(Service Level Agreement)가 첨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SLA를 번역하면 ‘서비스 수준 협약’이라고 해서 고객이 공급업체로부터 기대하는 서비스 수준(각종 창고 운영 KPI)을 기술한 문서이다. 즉, 합의된 서비스 수준(예로 재고정확도 등)을 달성 혹은 미달할 경우 인센티브 혹은 페널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두툼한 ‘계약서’가 필요한 창고운영을 담당하는 부서 이름이 C/L사업부였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화주와 3PL업체 중심의 물류환경은 온라인 이커머스 성장과 함께 필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빠른 배송 같은 고객의 요구가 중시되고, 취급제품은 다양화/소량화되고, 중소규모 벤더의 증가로 화주의 구성도 다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이 기존 C/L 패러다임에 갇힌 3PL서비스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은 필연적 결과이고, 그 고민의 결과가 자가 형태의 FBA 서비스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과거 C/L과 현재의 풀필먼트가 제공하는 서비스 범위는 별다르지 않다. 당연히 유통을 대하는 창고 및 운송 관련 물류서비스, 프로세스가 달라졌을 리는 만무하다.
차이가 있다면 풀필먼트는 표준화되고 자동화된 인프라를 선구축하고, 예전 화주가 감내해야 했던 초기 셋업비용 및 리드타임을 단축함으로써, 과거 C/L 패러다임 하에서 화주와 물류업체 간 장기계약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존이 제공하는 FBA의 대상은 과거 창고/운송 ‘장기’ 계약서 문구에 익숙한 고객들이 아니다. 물류 관련 초기 셋업비용과 시간을 감내할 정도의 대규모 제조/유통업체와는 다른 중소규모 셀러들이 FBA에 만족하는 고객들이다.
소규모 유통물량만을 가지고도 아마존 비즈니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아마존은 FBA 가입부터 손쉬운 온라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더 이상 두껍고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계약서’는 없다.
훨씬 간편해진 가입절차가 끝나면 셀러들은 자신만의 관리자 페이지인 셀러 센트럴에서 자신만의 물류업무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과금체계의 표준화도 풀필먼트의 특징인데 취급제품의 특성(사이즈, 위험물 등)에 따라 사전에 정의된 요율에 근거해서 FBA 사용량에 의해 과금이 되기 때문에 셀러는 굳이 요율 네고에 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
어차피 C/L 패러다임에서는 3PL만큼의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던 화주는 요율 네고에서 항상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소규모 셀러들에게 오히려 혜택일 수 있다.
셀러의 추가적인 혜택을 언급하자면, 재고보충을 위한 재주문점 관리 등 효율적인 재고관리를 위한 고급정보를 디폴트로 제공받음에 따라 기존의 C/L계약에서는 별도 비용으로 부과되던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변동성이 심한 셀러에게 ‘사용량’ 기준의 표준화된 과금구조와 실시간 온라인 정보 및 관리기능을 제공하는 풀필먼트 서비스가 유리한 대안일 수 있다.
반면에 대규모 안정된 물동량을 가진 화주에게는 풀필먼트 보다는 전통적인 C/L 계약이 서비스, 비용 모든 면에서 훨씬 유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풀필먼트는 물류서비스 관점의 ‘클라우드’서비스라 정의할 수 있다. 나만의 IT인프라를 만드느냐 아니면 표준화된 클라우드 환경을 사용함으로써 사업의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는 외부 3PL 물류서비스를 선택할 때도 동일하게 고민해야 하는 의사결정 사항이다.
• 풀필먼트의 핵심키워드는 유통물류 서비스의 범용화(Commodity)
아무리 소량의 제품유통을 한다고 해도 입고/검수/피킹/포장/라벨링/출고/배송/반품 등 고객 주문에 대응하는 유통물류서비스의 프로세스는 모두 ‘충족(fulfillment)’되어야 한다. 다만 초기 셋업비용은 그 비율대로 소규모가 되지는 않는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결론적으로 필자의 견해를 밝히면 풀필먼트는 사용량 기준의 표준 요율체계로 유통물류서비스의 ‘범용화(Commodity)’를 구현해 낸 기존과는 완전히 새로운 물류의 패러다임 변화를 지칭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1PL(자가물류)/2PL(계열전문물류)과 비교했을 때, 외부 아웃소싱을 의미하는 3PL(3자물류) 혹은 Contract Logistics 개념은 당시로는 물류서비스의 ‘상품화’를 이루어낸 혁신적인 변화였다.
이제 물류지식이 전무한 일반 셀러도 손쉽게 외부의 물류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만든 풀필먼트는 아웃소싱 물류서비스의 범용화를 실현한 혁신적인 운영방식으로 자리를 잡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 이런 범용화 달성에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앞서 설명한 ‘표준화’된 요율 및 운영인프라와 더불어 이를 지원하는 고도화된 S/W 시스템(예로 다수 로케이션, 다수 셀러 지원 WMS 기능 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요소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동화 장비의 활용이 풀필먼트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현재 대다수 국내 풀필먼트 업체들의 수익성이 좋지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대표주자 쿠팡의 경우도 자동화에 대한 준비 미흡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다.
풀필먼트를 단순한 패션용어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조어를 탄생시킨 변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기본을 되짚어 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란 생각이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