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2.05.19 10:52 ㅣ 수정 : 2022.05.19 10:52
식료품 외식 전기 가스 대중교통 등 엔화약세로 인한 전방위적인 물가상승에 직장인들 호주머니 사정 빈약해져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무제한 양적완화를 표방했던 아베노믹스에도 좀처럼 꿈쩍 않던 일본 물가가 최근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급등을 거듭하면서 일본 직장인들이 긴장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이미 상대적 가난에 처한 상황에서 수입 물가마저 가파르게 오르자 숨만 쉬어도 가난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한 예로 제국데이터뱅크는 올해 4월 기준으로 105개 식품회사가 라면, 식용유, 음료수 등 4081개 품목의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집계했는데 오히려 본격적인 물가상승은 지금부터라고 예측했다.
당장 라면시장 1인자인 닛신(日清)이 6월부터 컵라면과 봉지라면의 가격을 5~12% 인상하기로 했고 한국에서도 유명한 아사히맥주가 올해 10월부터 캔맥주의 가격을 6~1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서민들의 지갑사정에 직결되는 품목인데다가 시장경쟁이 치열한 탓에 가격인상에 심중할 수밖에 없지만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가격을 반영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가상승은 외식과 전기, 가스, 교통비 등에서도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일본 맥도날드는 3월부터 햄버거가격을 10~20엔씩 인상했고 스타벅스는 무려 16년 만에 커피가격을 최대 55엔 올리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려던 직장인들을 놀라게 했다.
도쿄전력과 홋카이도전력 등 대형 전력회사 10곳 중 5곳이 8개월 연속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했지만 5~6월에도 계속된 인상을 예고했고 각 가정과 사업장에 가스를 공급하는 전국의 4대 가스회사는 벌써 10개월 연속으로 가스요금을 인상하고 있다.
교통비에서는 일본항공이 항공권 가격을 8% 올렸고 교토와 오사카를 포함한 전국의 8개 주요 철도노선과 고속도로도 운임과 통행료를 각각 인상했다.
특히 도쿄 중심을 순환하며 직장인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JR야마노테선이 내년 3월에 요금인상을 예고하면서 안 그래도 비싸다는 소리를 듣던 대중교통 요금마저도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었다.
가격인상의 밑바탕이 되는 기업 물가지수는 올해 3월에는 전년 동월대비 9.5% 급등하며 오일쇼크 영향을 받았던 1980년 12월 이후 40여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치를 기록했고 소비자 물가지수 역시 전년 동월대비 0.8% 상승한 100.9를 기록했는데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작년 봄부터 통신요금이 인하된 효과를 제외한다면 실제 상승률은 2%를 넘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현재 상황을 두고 일본에서는 나쁜 인플레이션(悪いインフレ)이라는 표현이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엔저로 기업이익과 직장인들의 임금이 오르고 소비가 회복되면서 경제가 살아날 것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가계와 기업부담만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엔저와 물가급등에 일본 정부도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 지난 달 26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휘발유 가격억제를 위해 보조금 지급을 연장하고 저소득 가구에는 자녀 1인당 5만 엔의 지원금을 배부하겠다는 내용의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1단계일 뿐이고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 후에 종합적인 대응책을 내놓겠다’고 말한 기시다 총리지만 30년이나 지속된 물가정체를 단숨에 흔든 인플레이션을 일본 정부가 얼마나 컨트롤 할 수 있을지 직장인들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