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놓은 금융 공공기관 인사…정권말 눈치보기·낙하산 재현 우려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주요 금융 공기관 기관장 등 핵심 인사의 임기가 끝나 공백이 발생했음에도 후임 인선이 지연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권 교체기를 지나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인선을 미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KDB산업은행 등 일부 자회사 인사를 두고 ‘정권 알박기 논란’이 불거지는 등 정치 쟁점화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 짙어졌다. 새 정부가 출범돼야 인선 작업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현재 비어있는 자리가 자칫 새 정부 낙하산 인사로 채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손교덕 사외이사가 지난달 29일 퇴임했다. 하지만 후임 인선 절차가 지연되면서 산업은행의 사외이사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있다.
산업은행은 손 전 이사 후임 인선 작업을 중단, 당분간 공석으로 두기로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당분간 급하게 인선 작업을 진행하진 않을 것”이라며 “후임 인선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금융 공기관, 차기 정부 전까지 인사 ‘올스톱’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의 조심스러운 인사 행보가 정권 교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박두선 사장 선임 문제로 정치권에서 ‘정권 알박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여기에 본점 부산 이전 등 윤석열 정부와 적잖은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산업은행이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인사를 급하게 진행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사정은 IBK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IBK기업은행 주요 계열사 경영진과 사외이사 인선 작업이 멈춰있다.
지난달 19일부로 임기가 만료된 자회사 IBK캐피탈의 최현숙 대표, 지난달 26일 임기가 만료된 서병기 IBK투자증권 대표의 후임 인사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김창호 IBK신용정보 대표 임기도 지난 5일 만료됐지만 후임 인선은 중단한 상태다. 양춘근 IBK연금보험 대표와 김주원 IBK시스템 대표 임기는 이번 달 만료되지만 후임 인선 절차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외이사 인선도 지연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신충식·김세직 비상임이사 임기가 종료됐지만 후임자는 선임되지 않았다.
지난 2월 전규백 IBK자산운용 대표 선임을 끝으로 제20대 대통령선거 이후 사실상 인선이 중단된 상태다.
임기를 마친 계열사 대표들이 후임이 결정되기 전까지 유임키로 해 업무 공백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직 안정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책은행 외에도 주요 금융 공기관도 인사가 멈춰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경우 홍영 상임이사가 지난해 11월 임기를 마쳤지만 5개월이 넘도록 후임 인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신임 감사 선임 작업도 공모 접수를 받았음에도 현재 멈춰진 상태다.
금융결제원, 한국성장금융, 보험연구원 등은 수장 공백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김학수 금융결제원장의 임기는 지난 6일 만료됐지만 아직 후임 원장 선임을 위한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후임 결정이 늦어지면서 김 원장이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금융위나 한은이 금융결제원장 선임 절차를 섣불리 밟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새 정부 기다리는 금융기관, 낙하산 재현 우려
5월 임기가 끝나는 보험연구원장 자리의 경우 현재 차기 원장 면접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앞서 서류심사가 한 차례 미뤄진 데 이어 면접도 추가 연기 결정이 내려졌다. 이 같은 연기 결정이 금융위의 요청에서 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통령 인수위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 밖에도 한국판 뉴딜펀드를 총괄하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도 성기홍 대표와 서종군 전무이사, 구정한·김영규·남상덕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돼 후임 인사 후보군을 대상으로 면접까지 진행했지만, 인사 선임이 중단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금융 공기관으로서 차기 정부와 원활한 정책 수행을 위한 판단이자 정권 교체기 인사로 차기 정부와 마찰을 빚을 우려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 공기관 요직에 대한 후임 인선 작업이 중단되면서 인사 공백에 따른 업무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부 기관에서 후임 인선 전까지 유임 조치를 한다곤 하지만 조직 안정화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후 공석이거나 미뤄졌던 주요 금융기관 요직이 전문성이 모자란 정치적 인사로 채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권 교체기마다 공기관은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첫해 공공기관장 102명중 58명을,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첫해 기관장 125명 중 78명을 각각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서수남’(서울대·교수·영남)으로 불리는 친정권 인사로 채웠다.
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에서 금융 공공기관에 임명된 친정부 출신의 임원·이사만 총 63명에 달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정책 운용상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측면에서 정권 교체기에 함부로 인사 조치를 하긴 힘들다”며 “차기 정부가 수립 후 정책에 따라 인사 방향이 결정될 수도 있다. 다만 전문성 등이 반영되지 않은 정치 보은을 위한 나눠먹기식 인사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