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 및 원금 상환 유예 등 금융 지원 조치가 두달 뒤 종료될 예정인 가운데 ‘부실 폭탄’ 우려가 제기된다.
은행권은 그간 금융 지원 그늘에 가려진 부실 대출이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을까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추가 연장을 종료하고 부실 방지를 위해 채무 재조정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까지 이뤄진 금융 지원 규모는 총 272조2354억원이다. 만기 연장이 258조2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원금 유예와 이자 유예가 각각 13조8000억원, 2354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2020년 4월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 대출 만기 연장 및 원금 상환·이자 납부 유예를 시행했다. 빚으로 위기를 견뎌나가는 이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함이다. 이 조치는 연장에 연장을 거듭한 끝에 오는 3월 31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엔 추가 연장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는 3월 말 종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채 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 지원이 종료되는 3월 말 이후다. 아직 코로나19 재확산 등 경기 불확실성이 잔존한 데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기가 짧고 변동금리인 차주의 경우 금융 지원 종료에 따른 충격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금융 지원 종료가 다가오면서 은행권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본격적인 만기 도래와 상환이 시작될 경우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대손충당금을 쌓아놓으라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간 은행들의 정상적인 여신 관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통상 개인사업자에 돈을 빌려주면 영업 여부와 매출 내역, 신용등급 등에 대한 점검으로 필요에 따라 만기 연장이나 대출금리 인상, 한도 축소를 결정하는 데, 금융 지원에 따라 ‘묻지마 연장·유예’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 지원 영향에 차주의 상환 능력을 평가할 데이터 수집조차 어려웠단 얘기다. 이자도 못 내는 회생 불가능 차주를 걸러내지 못하면 잠재 부실이 커질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원래 개인사업자 대출은 타 기관에서 받는 운영 정보를 기반으로 상황에 따라 한도 축소나 일부 상환 등을 결정하는데, 폐업을 해도 알리지만 않으면 대출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원금에 이자까지 유예된 차주의 경우 앞으로 성실하게 납부할 능력이 되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0.25%에 불과하다. 은행의 여신 건전성이 제고된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 지원에 따른 착시 효과다. 본격적인 만기 도래, 원금 상환이 시작될 경우 연체율도 급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많다는 점도 뇌관으로 꼽힌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기업기출을 받은 개인사업자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27만2308명으로 전체 개인사업자 차주(276만9609명) 중 9.8%에 달했다. 개인사업자 10명 중 1명은 다중채무자인 셈이다.
장기화된 금융 지원 조치에 부실 대출 비중도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 풀려있는 대출 중 부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은 불확실성을 더한다. 이자 뿐 아니라 원금도 언젠간 갚아야할 빚인 만큼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연쇄 충격도 우려된다.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금융 지원이 2년 가까이 진행된 만큼 종료를 하되 채무 재조정같은 조치가 이뤄져야 부실을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통 절감을 명분으로 단순히 지원 기간만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지원을 2020년 4월 시작해 계속 연장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아직도 원금도 못 낸다고 할 정도면 (기업으로 치면) 좀비기업”이라며 “구조조정을 하거나 채무 재조정을 해야지 무작정 연장해 줄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대출 중 일부는 상환하게 하고, 나머지를 연장해 주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며 “자영업이 포화 상태에서 코로나19까지 덮쳐 버렸다. 옥석을 가려 정리할 건 하고 가야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