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리포트] 야간대학 출신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 통찰력과 담대함으로 현대중공업 넘어선 시총 키워
임종우 기자 입력 : 2021.10.01 07:35 ㅣ 수정 : 2021.10.01 10:08
자회사 에코프로비엠이 SK이노베이션과 10조원 규모 양극재 공급계약 체결 / 10년간 적자 이겨내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2위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1만명을 먹여 살리는 기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사업가가 있다. 바로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62)이다.
지난 1998년 10평 단칸방 사무실에서 직원 1명과 시작했던 에코프로는 긴 기간 동안 적자에 시달리던 작은 기업이었다. 물적분할을 통해 만든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이 지난 9월 9일 SK이노베이션과 약 10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렸다.
이제 7개의 계열사를 두고, 계열사 전체 임직원이 1700명이 넘는 ‘슈퍼 유망 기업’이 되었다. ‘1만명’의 꿈에 다가가고 있는 에코프로의 현재를 창조한 원동력은 이동채 회장의 '통찰력'과 ‘끈기’이다.
■ 10평 사무실에서 시작된 ‘성공 신화’ / 교토의정서 보고 떠오른 통찰력을 실행에 옮긴 결단의 소유자
90년대 회계사로 활동하며 부를 쌓은 이 회장은 ‘1만명을 먹여 살리는 기업가’라는 꿈을 가지고 재산의 대부분을 모피사업에 투자하였다. 그러나 당시 외환위기가 들이닥치며 실패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97년 온실 가스 감축 협약인 ‘교토의정서’ 체결 소식을 듣고 친환경 관련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통찰력을 실행에 옮긴 결단의 소유자인 것이다.
1998년 10월 서울 서초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에코프로’는 지속적인 적자에 시달리던차에 변화의 분기점을 맞이한다. 2006년 제일모직으로부터 ‘자사 보유 양극재 기술’과 그 영업권을 인수받게 되었고, 2007년 니켈계 양극소재 40톤과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바로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 양극재 소재를 본격적으로 착수한 이후 약 10년가량을 적자에 시달렸다. 2015년 에코프로의 사업보고서 상 순이익률은 고작 ‘0.17%’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의 에코프로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하지만 2016년 에코프로비엠을 물적분할 하고나서 반등이 시작됐다. 2016년 998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1조3000억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5년만에 매출이 무려 13배가 된 것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이러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6.7%를 기록하며 일본의 스미모토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고, 추격세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터리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이 회장의 혜안은 10년의 적자를 버틴 끝에 마침내 적중했다.
■ 에코프로 상장 3사 시가총액 ‘13조6000억’… 양극재 기업 에코프로비엠은 2년만에 주가 10배로 폭등
에코프로의 2차전지 제조 자회사 ‘에코프로비엠’의 9월30일 기준 종가는 46만7000원이다. 2019년 같은 날의 종가는 4만9400원으로 딱 2년만에 거의 10배가 된 것이다.
에코프로비엠의 시가총액은 9월30일 기준 무려 약 10조2364억원이다. 코스닥 순위 2위에 올랐으며, 이는 타 대기업 중 현대중공업(9월30일 기준 약 10조2533억원)과 맞먹는 수치이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계열사(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에이치엔)을 모두 합하면 약 13조6069억원에 달한다. 이는 신세계그룹, 효성그룹 등의 대기업과 견주는 수준이다.
지난 7월 발간된 사보 ‘ECOPRO 2021 여름호’에는 에코프로그룹을 바라보는 투자전문가들의 의견이 실려있다.
2차 전지 소재를 담당하는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에코프로그룹의 양극재 사업이 가진 경쟁력뿐만 아니라 ‘에코그룹 자체가 갖고 있는 리사이클링 경쟁력’이 성장동력으로 돋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직 시장에서 ‘배터리 리사이클링’ 문제를 크게 주목하고 있지 않은데, 에코프로는 이런 문제까지도 그룹 차원에서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SK이노베이션과 10조원 규모의 공급계약 체결로 목표주가 2배로 폭등 / 임직원 스톡옵션 행사하면 막대한 차익 실현
에코프로비엠은 9월 9일 SK이노베이션과 10조원 규모의 ‘고성능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잭팟’을 터뜨렸다.
증권사들은 일제히 목표주가를 큰 폭으로 상향조정했다. 기존의 2배 수준인 50만원대로 올렸다. 하이투자증권은 기존 38만5000원에서 52만원으로 상향했으며, △이베스트투자증권(52만8000원) △KB증권(50만원) △대신증권(목표가 50만원) △유안타증권(48만원) △한국투자증권(44만원) 등으로 전부 상향조정했다.
에코프로비엠의 임직원들은 스톡옵션(stock option, 임직원이 기업으로부터 일정한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면 엄청난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됐다. 에코프로비엠의 권우석 대표이사와 김병훈 대표이사의 경우 각각 거의 10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동채 회장이 과거 말했던 “출근하고 싶어 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 ‘교토의정서’에서 가진 확신과 적자를 감수하는 끈기… ‘1만명’의 꿈도 머지 않았다
이 회장은 경북 포항의 시골마을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남 7녀였다. 귀한 아들이라 중학교 때 대구로 유학을 가서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시골 수재였던 셈이다. 은행에 취직했으나 학력의 벽을 실감하고 영남대 야간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대졸학력을 인정받으려면 퇴사후 재입사하는 조항에 걸렸다. 그는 퇴사 후 삼성그룹에 들어갔으나 스스로 작은 부품에 불과하다는 회의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퇴사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당시만 해도 명문대 상경계출신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험이었다. 회계사 자격증을 획득한 그는 성공했다.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1만명을 먹여 살리는 기업가’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꿨다. 모피사업에 재산을 투자했다. 이 사업은 실패했다. 하지만 재도전했다. 1997년 교토의정서 체결 뉴스를 보고 친환경산업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했다.
외환위기로 모피사업을 말아먹은 직후인 1998년 10월에 단칸 사무실에서 에코프로를 시작했다. 2021년 9월 현재 기준, 에코프로그룹은 7개의 계열사에 1700명이 넘는 임직원이 고용하고 있다. 아직 1만여명을 먹여살리는 기업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만약 이 회장이 안정적인 회계사에 머물렀다면, 혹은 모피 사업에 실패해서 주저앉았다면, 혹은 10년간의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2년만에 주가가 10배가 오르고, 5년만에 매출이 13배 오르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의 자리를 위협하는 ‘에코프로그룹’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에코프로 신화’는 안정적인 삶의 조건을 떨쳐내고 꿈을 향해 질주하는 ‘담대함’, 실패에도 무릎 꿇지 않는 ‘용기’, 글로벌 경제의 큰 흐름에서 미래먹거리를 읽어내는 통찰력 그리고 고통스러운 적자를 견뎌내는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