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기자 입력 : 2021.04.20 08:01 ㅣ 수정 : 2021.04.20 08:01
조현준의 '신뢰경영'이 힘, "재력가의 손자 되기는 쉽지만 조홍제의 손자 되기는 쉽지 않아"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명실상부한 3세경영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다. 부친인 조석래 명예회장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건강상 이유로 동일인(총수)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고, 공정위는 5월 1일 대기업집단 동일인을 지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017년 취임한 조 회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더 큰 법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으면서 그룹의 혁신성장을 이끌어 가게 된다. 그의 핵심 비전은 ‘1등주의’로 요약된다. 스판덱스, 타이어코드와 같은 기존의 글로벌 1등을 강화하고 수소밸류체인과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같은 신성장동력 산업의 최강자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조현준 회장의 1등주의 경영을 5회에 걸쳐 심층보도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효성그룹은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이외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1등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폴리에스터 원사(안전벨트용 원사)와 자동차 에어백 시장에서도 글로벌 1위이다.
모빌리티 산업은 전세계 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 및 신사업 선취점을 차지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부문이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전장사업, 자율주행차, 전기차·수소차 등관련 고부가가치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효성 역시향후 모빌리티 산업을 이끌어 갈 기업으로 꼽힌다. 에어백과 폴리에서터 원사는 모빌리티산업중에서 안전장치 부문에 해당된다.
■효성티앤씨의 폴리에스터 원사는 글로벌 안전벨트 점유율 32%, 효성첨단소재의 에어백은 글로벌 점유율 40%
효성티앤씨의 폴리에스터 원사는 자동차 시트벨트 분야 세계 시장점유율 32%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1g/d 강도의 원사를 세계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효성첨단소재의 에어백 부문 역시 세계 시장점유율 4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품이다. 특히 지난달 16일 아마존의 자율주행차 전문 자회사인 ‘죽스(Zoox)’에 에어백을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효성첨단소재의 에어백 제조 부문인 GST 글로벌은 내년부터 로보택시에 차세대 'OPW(one piece woven) 에어백'을 공급할 예정이다.
이는 조현준 회장의 미래모빌리티 산업 진출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효성은 2011년 독일 현지 법인을 통해 세계 1위 에어백 직물업체 '글로벌 세이프티 텍스타일스(GST)'의 지분 100%를 확보했다. 당시 계약에는 조석래 전 효성그룹 회장의 삼남이자 조현준 현 효성회장의 동생인 조현상 산업자재PG(퍼포먼스그룹장)이 직접 독일을 방문해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효성 사장이었던 조현준 회장이 추진한 '수출기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GST글로벌은 아직 자본 총액에 비해 부채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선제적 투자로 생산설비를 늘린 것이 요인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가 늘어나고 전기차·수소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 시대가 도래하면서 에어백과 시트벨트 원사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시장 자체의 고성장도 예고됐다. 시장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30년 6조7000억달러(한화 약 7396조8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타이어코드, 에어백, 시트벨트 등 차량용 원사 글로벌 1위 제품을 다수 보유한 효성의 성장성이 주목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변화에 따른 완성차 업계들 변화뿐만 아니라 효성과 같은 부품업체, 원사업체들도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효성이 모빌리티 산업 변화 흐름에 앞서 선제적으로 투자한 원사제품들이 많아 앞으로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한 번 세운 목표는 실천하고 한 번 맺은 약속은 지키는 조현준의 '신뢰경영'이 힘
조현준 회장의 1등주의 경영은 효성의 창업주인 고(故)조홍제 선대회장의 '신뢰 경영'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 번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한 번 세운 목표는 반드시 실현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에 근무하다 56세의 나이로 창업했던 선대회장은 삼성물산 재직시 당시 동양그룹 이양구 회장과 설탕을 1kg당 3,800원에 공급하기로 구두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헌데 변수가 생겼다. 얼마 안되서 1kg당 설탕 가격이 3배 가까이 폭등해버렸다.
보통 사람가라면 위약금을 물고라도 당초 계약을 취소해야 할 상황이었다. 더욱이 선대회장은 상대방과 구두약속만 한 상태였다. 약속을 깨도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약속을 이행했다. 이와 관련 선대회장은 "장사란 한 푼의 이익을 위하여 10리 길을 뛰는 것이지만 내 생각은 돈보다는 사람의 신의가 앞선다는 것이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선대회장은 조현준 회장의 조부이다. 조 회장은 " 재력가의 손자거나 권력자의 손자 되기는 쉽지만 조홍제의 손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조부에 대한 존경심의 표명에 그치는 게 아니다. '신뢰경영'이라는 조부의 경영철학을 승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조 회장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효성은 사업을 시작했다가 철수한 적이 없다. 실패하더라도 버린 적은 없다"며 "한번 결정하면 쭉 밀고 나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결과를 본다"고 밝힌 적 있다.
이러한 신뢰 경영은 효성 사업부문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차량용 안전제품의 경우 소재부터 완성품까지 모든 공정에서 효성의 기술력이 녹아있고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사업영역을 확대해왔다.
타이어코드에서 시작해 시트벨트(안전벨트 원사)와 에어백에서도 세계 1위를 거머쥐게 된 것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관성있게 연관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경영철학의 산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