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맨십에서 싹튼 '승부사 정신', 기술경쟁력으로 날개를 달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명실상부한 3세경영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다. 부친인 조석래 명예회장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건강상 이유로 동일인(총수)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고, 공정위는 5월 1일 대기업집단 동일인을 지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017년 취임한 조 회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더 큰 법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으면서 그룹의 혁신성장을 이끌어 가게 된다. 그의 핵심 비전은 ‘1등주의’로 요약된다. 스판덱스, 타이어코드와 같은 기존의 글로벌 1등을 강화하고 수소밸류체인과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같은 신성장동력 산업의 최강자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조현준 회장의 1등주의 경영을 5회에 걸쳐 심층보도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효성은 자산기준 재계 순위로 20위권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1등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있는 대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첨단소재 산업분야에서 다수의 글로벌 1등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새로운 1등을 만들기 위한 도전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2017년 1월 16일 취임 이래 ‘기술 경쟁력’을 토대로 삼아 기존 글로벌 1등 상품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해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연관산업 및 신성장 산업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 글로벌 1등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경영전략은 한 마디로 ‘1등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효성의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다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등주의의 원동력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창업자인 조부시절부터 닦아온 기술경쟁력이고, 둘째는 조 회장의 강한 승부욕이다. 그의 승부사 정신은 효성의 전통인 기술경쟁력으로 날개를 달았다.
■ 4년 전 취임사서 '1등주의 경영'을 화두로 던져...'삼총사'의 좌우명인 '헌신적 팀웍'을 방법론으로 제시
조 회장은 4년 전 취임사에서부터 '승부사 정신'을 화두로 던졌다.
조 회장은 "페어플레이 정신을 바탕으로 정정당당히 겨루되 반드시 승리하는 조직을 만들자"면서 "주자가 많이 나가는 것은 승패와 상관없고, 나간 주자를 (홈 플레이트로) 불러들여야 승리한다"고 말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점수, 즉 성과가 있어야 생존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이어서 승리를 거두는 1등기업이 되기 위한 방법론으로 '헌신적 팀웍'을 제안했다.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좌우명인 "‘All For One, One For All(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를 인용하기도 했다. 개인과 조직이 서로를 위해 존재해야 헌신적 팀웍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조 회장은 미국 세인트폴 고등학교 재학중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학교 야구팀 주장을 맡았다. 낯선 타국에서 키운 리더십과 승부욕은 1등주의 경영철학의 씨앗이 된 것으로 보인다.
■ 1등주의 경영이 '강력한 균형 포트폴리오'와 함께 양날개 형성
그의 경영철학은 선순환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효성이 보유한 글로벌 1등 제품의 대명사인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은 조 회장 선임 이후 시장 지배력 강화에 성공했다. 코로나19 악재 속에서도 스판덱스 생산 설비 구축을 멈추지 않은 조 회장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 스판덱스 수요가 늘자 총 1000억원을 투자해 터키와 브라질 공장을 추가 증설하기로 했다. 브라질 공장은 올해 12월 증설이 완료되면 연 생산 능력이 기존 1만2000톤에서 2만2000톤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11월 600억원을 추가 투입해 증설한 터키 공장도 올 7월부터는 기존 2만5000톤에서 4만톤으로 생산량이 확대된다.
타이어코드 역시 마찬가지다. 효성첨단소재의 타이어코드 세계 점유율은 50%이다. 사실상 전세계에 있는 승용차 타이어의 절반 이상이 효성의 타이어코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타이어코드 기술력을 이용한 특수섬유 시장에서도 글로벌 1등을 꿈꾸고 있다. 기초는 다져져 있다. 탄소섬유·아라미드섬유 등 특수섬유 부문에서 각각의 원천기술을 유일하게 확보하고 생산하는 기업이 효성이다.
조 회장은 이미 탄소섬유 글로벌 1위의 비전을 던졌다. 2019년 8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전라북도 탄소섬유 공장에서 열린 '탄소섬유 신규 투자 협약식'에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1등이 가능한 이유는 소재부터 생산공정까지 독자 개발해 경쟁사를 앞서겠다는 기술적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다른 소재 사업의 씨앗을 심기 위해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2028년까지 탄소섬유 산업에 총 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연산 2000톤(1개 라인)인 생산규모를 연산 2만4000톤(10개 라인)까지 확대키로 했다. 단일규모로는 세계 최대이다. 효성의 글로벌 탄소섬유시장 점유율은 글로벌 10위권에서 탑 3위 수준인 10%를 상회할 전망이다.
탄소섬유 경쟁력은 조 회장이 지목한 신성장동력인 '수소밸류 체인'의 중추가 된다. 탄소섬유는 수소탱크의 원재료이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의 연료탱크는 효성의 탄소섬유를 사용한다. 탄소섬유와 함께 액화수소, 수소충전소를 수소밸류 체인으로 형성, 효성의 새 먹거리로 개발한다는 게 조 회장의 구상이다.
효성중공업은 액화수소를 생산하는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을 오는 2022년까지 설립할 계획이다. 여기에 국내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의 글로벌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유럽은 물론 북미, 아시아 시장에서 ESS 공급을 넓히고 있다.
그의 1등주의가 효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스판덱스는 효성티앤씨, 타이어코드와 탄소섬유는 효성첨단소재, 액화수소는 효성화학, ESS와 수소충전소는 효성중공업의 주력제품이다. 1등주의 경영은 조 회장의 또 다른 경영전략인 '강력한 균형 포트폴리오'와 양날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뉴스투데이 2020년 3월 16일자 보도 '[효성의 미래 (1)] 강력한 균형 포트폴리오, 영업이익 1조 클럽 재진입한 조현준 체제의 경쟁력' 참조>
조 회장의 1등주의 경영은 3가지 실천전략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 기존 강점의 극대화 전략 △ 최고경영자(CEO) 브랜드 마케팅 △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정치·경제적 공략(현장경영) 등이다.
■ 전략 1. 기존 강점을 극대화하라...글로벌 초격차 달성
먼저 기존 강점인 ‘기술력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경영의 일관성과 1등주의를 함께 실현해 왔다. 기술력 극대화 전략은 창업주인 고(故)조홍제 회장부터 이어져 온 효성의 ‘성공DNA’의 연장선이다. 조 회장은 스판덱스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2010년부터 11년 간 이어오고 있으며 총수 취임 3년 만인 2019년 효성의 영업이익 1조 클럽을 달성하기도 했다.
기존 강점인 기술력을 강화해 신사업에 진출하는 방식도 주목된다. 2003년부터 자체기술로 개발한 아라미드 섬유에 이어 2007년 탄소섬유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후 국내 최초로 2011년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이들 특수섬유에 대한 국내 유일 생산 기업이기도 하다.
시장의 기대도 받고 있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 증권 연구원은 24일 관련 리포트를 통해 "효성첨단소재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10.7% 늘어난 7616억원, 영업이익은 131.7% 증가한 658억원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본업인 타이어보강재 가동률 및 가격 상승, 스틸코드 베트남 이설로 인한 원가 절감 효과, 스판덱스 호황으로 인한 베트남 스판 이익률 상승과 더불어 아라미드, 탄소섬유 등 신성장동력의 견조한 수익성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전략 2. CEO가 브랜드 마케팅을 진두지휘하라
두 번째 전략은 최고경영자(CEO) 브랜드 마케팅이다. 조 회장은 전면에 나서서 효성그룹과 자신에 대한 브랜드 마케팅을 실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브랜드 마케팅 시대다. 그 성패가 시장에서의 운명을 가른다. 효성의 1등 제품들은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보다 B2B(기업간 거래) 또는 B2G(기업과 정부간 거래)분야에 포진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은 자신의 경영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편이다.
그는 "세계 1등 제품이 곧 세계 1등 기술이라고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등 기술만으로 1등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브랜드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 회장은 세계 최대 규모 섬유 전시회 ‘인터텍스타일 상하이 2018’에서도 “글로벌 1위 기업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 개발·혁신, 맞춤 마케팅 활동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술 경쟁력 만큼 맞춤 마케팅 역시 중요하다는 조 회장의 경영 철학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지난 16일 효성 주주총회에서도 김규영 효성 사장은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해 효성의 이름만으로도 최고의 제품이란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며 시장에서의 효성 브랜드 파워를 그룹차원에서 직접 강화할 것을 예고했다.
■ 전략 3. 글로벌 시장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공략하라
조 회장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때 정치·경제·사회적 접근법을 총동원하는 스타일이다. 수출, 투자 등을 위해 글로벌 현장 경영을 할 때, 현지 기업인만 만나지 않는다. "시장은 시장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짓거나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해당국 정부의 협조, 우호적인 현지 여론 조성 등도 주요한 성공 변수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2018년 2월 조 회장은 응우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난 지 열흘 만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났다. 효성 스판덱스·타이어코드 공장 확대를 위해서다. 같은 해 5월에는 중국 스판덱스 사업장을 방문했고 이듬해인 2019년에는 터키·독일 사업장을 순회하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 사업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스판덱스는 유럽, 남미, 아시아, 북미 대륙별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지난해 글로벌 스판덱스 시장 점유율 약 33%, 타이어코드 점유율 51% 등을 기록한 것은 이 같은 조 회장의 광폭행보와 무관치 않다.
효성 관계자는 이와 관련 본지와의 통화에서 "효성의 강점인 기술 경쟁력, 맞춤 마케팅, 현장경영 등이 신사업 영역에 녹아들면서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술 경쟁력과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