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황진원 기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모두 이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공지능 알파고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필승전법을 터득했다. 2연승 비결이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있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알파고는 지난 9일 개막한 이세돌9단과의 세기의 바둑대결에 앞서 자신의 전력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대신 이세돌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기원 내부에서 ‘불공정 게임’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11일 연합뉴스를 통해 "알파고는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있지만, 이미 공개된 이세돌 9단의 모든 기보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세돌 9단은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 상대와 싸워야 한다. 이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기원의 행정책임자가 처음 내놓은 불공정 문제여서 이번 대국의 정당성 논란으로 확대될지 주목된다.
◆ 전력숨긴 알파고, 한국기원 정보요구에 “안된다”
양 총장이 제기한 불공정 근거로는 첫 번째 알파고가 처음부터 전력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데 있다. 한국기원은 이번 대국을 앞두고 딥마이드에 알파고의 정보를 요구했다. 알파고의 연습대국 기보 요청과 함께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와 연습대국도 제안했으나 딥마인드 담당자로부터 “안된다”란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 딥마인드 계정 사용자는 알파고
두 번째로 알파고가 일찍이 한국 인터텟바둑사이트를 통해 한국기사들과 대국을 펼치며 기력을 쌓았다는 설도 나왔다. 이른바 몰래학습설이다. 한국측이 'deepmind' 계정 사용자가 알파고라는 추정을 내놓자 딥마인드는 “개발자의 계정”이라고 해명했다.
◆ 허허실실로 이세돌 방심 유도
세번째로는 심각한 정보불균형을 들 수 있다. 이세돌9단이 사전에 확보한 정보라곤 지난 1월 네이처를 통해 공개된 지난해 10월 알파고와 유럽챔피언 판후이 2단과의 5번기 기보가 전부였다. 거기에 담긴 판후이 2단의 기력은 정상급 기사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이세돌에겐 도움이 되기보다 알파고의 전력을 과소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바둑계 모두가 이세돌의 5-0 승리를 의심치 않았고, 이세돌9단도 처음에는 “한판만 져도 내가 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알파고의 기보공개는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이세돌의 방심을 사려는 전술이었을지 모른다.
반면 이세돌이 둔 모든 기보는 공개되어 있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상대로 고른 뒤 이세돌 맞춤학습에 전념했다. 지금까지 3천만건의 기보를 학습했고, 한달에 100만번의 대국을 소화하며 기력을 쌓아올렸다. 지난 9일 1국 대전이 있기전까지 알파고의 가공할 실력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같은 불공정 문제는 주로 정보기술(IT) 전문가와 네티즌이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원측은 그러나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꺼린다.
이미 큰 판은 차려졌고, 연패에 몰린 처지에서 불공정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패자의 변명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승부만 놓고보면 지피지기에 성공한 알파고의 전략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