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폐쇄’ 은행에 압박 가하는 당국·정치권...입장차 여전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비대면 금융 활성화가 촉발한 은행권 점포 폐쇄 가속화에 대해 금융당국과 정치권 등이 쓴소리를 내고 있다. 비용 절감에 나선 은행들이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 약화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은행 점포 폐쇄에 대한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점포 수는 총 5690개로 지난 2019년 말(6738개) 대비 1048개 줄었다. 이 기간 사이 △2020년 말 6427개 △2021년 말 6121개 △2022년 말 5831개 △2023년 말 5747개 등 매년 감소 흐름이 지속된 결과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역시 2019년 말 3만6464개에서 지난달 말 2만7157개로 거의 5년 만에 9307개 급감했다.
은행 점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건 디지털·비대면 금융 활성화에 기인한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실행할 수 있는 금융 업무 범위가 확대된 만큼 직접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 수요도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한 시중은행의 올 3분기 예·적금 가입자 중 67.5%가 디지털 채널에서 이뤄졌다.
다만 이에 따른 금융 접근성 약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의 경우 금융 상품에 가입하거나 대출을 실행할 때 대면 업무 의존도가 높은 데다, 수도권 외 점포 밀집도가 낮은 지역 거주자들은 은행 점포 폐쇄로 인한 불편함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독당국도 은행들의 점포 폐쇄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6일 열린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한 금융권 공감의 장(場)’ 간담회에서 “소비자들의 금융서비스 접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금융 산업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책무”라며 “금융업계가 이러한 책무를 충분히 고민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은행 점포 폐쇄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8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이 점포 폐쇄 6개월 전까지 금융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이 법은 은행이 점포 폐쇄와 관련해 외부 전문가 및 인근 주민의 의견 청취를 포함한 ‘사전 영향 평가’ 결과를 당국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은행권은 디지털·비대면으로 기울고 있는 금융 서비스 변화에 대응한 점포 수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갈수록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점포를 유지하기에는 재무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점포 운영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임대료, 관리비 등을 고려했을 때 수지탄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신 은행들은 AI 등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특화점포와 2개 이상의 은행이 한 점포에서 영업하는 공동점포 등을 통해 고객의 편의·접근성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일부 지역에는 점포 폐점 시간을 오후 6시 이후까지 연장하는 탄력점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대책들이 그동안 누적된 점포 폐쇄 효과를 상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탄력점포의 경우에는 직장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계속 확대해 나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도 “AI나 키오스크처럼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점포는 아직 기본 업무정도만 처리하는 수준이고, 공동점포도 은행 간 영업 경쟁이나 비용 분담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연내 은행권과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금융 접근성 제고 방안을 마련·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점포 폐쇄에 따른 대체수단 설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필요한 규제 샌드박스 등 제도적 지원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