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처 찾아 떠나는 은행 요구불예금…‘트럼프 트레이드·예적금’
실세요구불예금, 지난달 약 10조원 빠져나가
[뉴스투데이=김세정 기자]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빠르게 줄고 있다. 요구불예금은 월급통장과 같이 이자가 아예 없거나 적은 상품이다. 은행 입장에선 큰 이자 비용 없이도 자금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큰 저원가성 예금이다. 최근 높은 수익률을 좇아 자금이 투자처로 떠나는 ‘머니 무브’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 요구불예금이 급감하고 있다.
1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권에서 지난달 약 10조원에 가까운 실세요구불예금이 빠져나갔다.
10월 말 실세요구불예금 잔액은 301조 5000억원으로, 9월 말에 비해 9조7000억원 감소했다. 저축성예금 가운데 인출이 자유로운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잔액은 581조7000억원인데, 이 역시 전월 대비 2조8000억원 줄었다.
요구불예금은 일정 기간 동안 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예·적금 상품과 달리 언제든지 자유롭게 돈을 입·출금할 수 있는 예금이다. 유연한 자금 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이자율이 낮다.
통상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경우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금을 보관하는 대기성 자금으로 활용되는데, 요구불예금 잔액이 줄었다는 것은 금융 소비자들이 투자처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국내 자금이 빠르게 미국 증시로 흘러가는 움직임이 확연하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게 베팅을 걸었던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가 증가하면서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지난 7일 1013억6571만 달러로 집계됐다.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국내 투자자가 외화증권을 매수해 예탁원에 보관하고 있는 금액으로, 쉽게 말해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 규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최근 은행의 대기성 자금이 급감한 이유에 대해 “도널트 트럼프 당선과 동시에 미국 대선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관망세를 보이던 자금이 투자처를 찾아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에 베팅하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점점 더 본격화되면서 앞으로도 대기성 자금이 대거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나면서 미국으로의 쏠림 및 트럼프 트레이딩이 목격되고 있다”며 “트럼프의 정책 드라이브가 임기 초반 2년 동안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의 대기성 자금은 고금리 막차를 노리는 예·적금 상품으로도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10월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10월 말 은행의 정기예금 수신 잔액은 1053조4000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14조4000억원 불었다. 9월에 전월 대비 6조3000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증가폭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들도 예금금리를 내리고 있지만, 지금이 가장 높다는 생각에 수요가 몰린 것 같고, 전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도 은행으로 향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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