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대이동’ 예고...은행권, 점유율 방어전 돌입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이 이달 말 시행될 퇴직연금 실물이전 사업을 대비해 본격적인 고객 유치 경쟁에 돌입했다. 퇴직연금 시장이 약 400조원 규모로 몸집을 키운 데다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다고 평가되는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 가능성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강점으로 꼽히는 안정성에 수익률 제고 성과도 앞세우며 시장 점유율 1위 타이틀을 사수하겠다는 각오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는 오는 31일부터 퇴직연금 가입자가 기존 운용 상품 매도(해지) 없이 사업자만 바꿔 이전할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사업을 시행한다. 지금까지는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사업자로 이전하려면 기존 상품 해지와 이에 따른 중도해지이율 적용 등 불편·손실이 발생했는데 이 같은 장벽을 모두 허무는 것이다.
이번 사업 시행에 따라 신탁계약 형태의 원리금보장 상품인 예금, 이율보증 보험계약(GIC),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기타파생결합사채(DLB)를 비롯해 공모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주요 퇴직연금 상품 대부분을 사업자만 변경하고 그대로 옮길 수 있게 됐다.
금융권은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퇴직연금 대이동’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382조3000억원에 이어 올해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대에 돌입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올해 말 430조원까지 커지고 2026년에는 5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했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 이상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권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긴축 완화로 은행 이자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증권업계는 증시 회복 등의 영향으로 호황을 누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은행에서 증권사로 대거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은행들이 잇따라 퇴직연금 관련 이벤트를 실시하거나 자사의 운용 성과를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특히 은행의 강점인 안정성 뿐 아니라 수익률 중심의 홍보도 이어지고 있는 흐름이다. 퇴직연금은 주거래 고객 규모는 물론 수익성과도 직결돼 있는 분야인 만큼 실물이전 사업 시행 이후 타 업권으로의 고객·자금 이탈을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다.
KB국민은행은 퇴직연금 실물이전 사업이 시행되는 오는 30일까지 타 금융사 개인형퇴직연금(IRP) 실물이전 사전예약 고객에 커피 쿠폰을 제공하고 있다. 또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배우·가수 등 유명인을 모델로 한 퇴직연금 광고를 연이어 선보이며 고객 접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또 하나은행은 최근 올 3분기 말 기준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이 원리금비보장 상품 기준 14.14%로 지난해 2분기부터 6분기 연속 시중은행 1위를 달성했다고 홍보했다. 이는 같은 기준 KB증권(11.58%)과 삼성증권(13.31%), 신한투자증권(11.53%) 등의 증권사와 비교해도 높은 수익률이다.
이 밖에도 은행권은 운용 상품 다양화, 자산관리 상담 서비스 강화, 수수료 혜택 제공, 콜센터 확대 운영 등 퇴직연금 실물이전 사업 시행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 유입, 이탈 흐름에 따라 시장 주도권이 옮겨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행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그동안은 은행 고객은 안정형 투자, 증권사는 공격적 투자 성향이 강했는데 (은행 고객도) 수익률에 대한 고객 눈높이가 높아지는 흐름”이라며 “퇴직연금 적립금이 늘어나면 주거래 고객 확보와 연계 상품 가입 같이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되기 때문에 계속 공략해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