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기획 : 직장인 정신 건강 현주소 ⑤] “정책 대전환” 팔 걷은 정부에 지자체도 지원...‘정신질환’ 인식 개선은 과제로
OECD 자살률 1위 불명예에 정신건강 정책 대전환
대통령 직속 기구 필두로 국민 정신건강 지원 강화
지자체도 정신건강 증진 정책 활발...시민 밀착관리
예산·인력 여전히 부족..정신질환 인식 개선 필요해
최근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 가운데 특히 4차산업 종사자들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3차 산업이 중심이던 과거 1980~1990년대까지는 정신 건강 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을 사실상 찾기 어려웠다. 정신보다는 육체 중심의 노동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중증 이상 환자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 장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치료를 위해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가 사회 문제로 인식 자체가 전환되고 있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기업 등의 사례를 총 15회에 걸쳐 보도하며 우리 사회와 직장에 작은 걸음이나마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국민 정신건강 정책 ‘대전환’에 나선다. 대통령 직속 기구를 필두로 국민 정신질환에 대한 예방과 치료, 회복 등 전(全) 과정을 밀착 관리하는 데 역량을 쏟는다.
전국 주요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시민 정신건강 지키기’ 움직임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거점별 복지센터 운영을 통한 취약계층 접근성 강화와 고위험군 대상 집중관리 등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자체가 합심해 정부의 정신건강 증진 목표를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지자체가 지속적으로 정신건강과 관련한 제도·정책 강화에 나서는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다만 여전히 부족한 예산·인력과 이에 따른 관련 지표 개선 부진 등은 더 보완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여기에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과제로 지목된다.
■ 대통령 나서 “국민 정신건강, 국가가 챙길 것”...정책 혁신방안 뜯어보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1차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국민 정신건강을 돌보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국정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경제와 기술, 문화 등의 분야에서 강국으로 자리 잡아도 국민의 행복도가 제고되지 않으면 국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한국인의 정신건강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관련 지표를 통해 뚜렷이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호소하며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수는 2017년 약 321만명에서 2022년 437만명으로 5년새 36% 증가했다. OECD 38개국 중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03년부터 가장 최근 조사인 2022년까지 줄곧 부동의 1위를 기록 중이다.
특히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자살자(15~64세) 9234명 중 4735명(51.3%)이 경제 활동을 하던 직장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 위주의 끊임없는 경쟁 구도와 그에 따른 열등·우울감, 경제적 빈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이 처참한 국민 정신건강 수준은 저출산 문제와 함께 ‘한국 위기론’을 불러오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윤 대통령이 직속 기구를 설치하고 정책 재설계 및 대전환을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앞으로 우울증과 불안 등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를 국가가 직접 챙기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본격 추진될 정신건강 정책 혁신방안의 핵심은 ‘전 국민 마음투자 사업’이다. △일상의 우울이 정신질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정신응급 대응 및 ‘치료’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개선하며 △정신건강의 온전한 ‘회복’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국민 100만명에게 ‘전문 심리상담 패키지’를 점진적으로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집중 관리가 필요한 직장인을 위해서는 직장 내 정신건강 지원을 강화하고, 고위험 업종에 대한 관리를 활성화하겠다고 제시했다. 직장 내에서 충격적인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근로자의 일상생활 지원을 담당하는 직업트라우마센터는 현재 14곳에서 내년 24곳으로 확대한다. 또 직무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기 위한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도 확충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정신질환도 육체적 질환과 동등하게 온 사회가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면서 “일상생활에서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 일에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두 함께 관심을 갖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자체도 시민 정신건강 ‘핀셋 관리’...자가검진부터 심리지원까지
정부 뿐 아니라 자자체도 다양한 지원 정책으로 정신건강 증진에 힘을 싣고 있다. 시민들에게 정신건강 보호 방법과 증상 측정, 개선 방법 등을 안내하고 필요에 따라 거점별로 마련된 복지센터 등에서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건강국 산하에 있는 정신건강과를 중심으로 정신건강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온라인 정신건강 서비스 △정신질환자 지역사회 정착 지원 △지역사회 정신건강 정책 지원 △찾아가는 심리지원 마음안심버스 운영 등이다.
또 서울시는 총 150개의 정신보건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료원이 운영하는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를 비롯해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요양시설 △취업지원시설 △정신재활시설 △지역사회전환시설 등이 있으며 서울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경우 정신건강과 관련한 연구 심포지엄 진행과 지역 정신건강 관련 기관 실무자 대상 역량 강화 교육 등도 진행하면서 시민 지원 정책 고도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 서울시는 정신건강 정보와 자가검진, 자가관리 등을 제공하는 통합 플랫폼 ‘블루터치(Blutouch)’도 운영 중이다.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한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블루터치는 시민들이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나 뉴스,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게 운영되고 있다”며 “자가검진을 받고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경우 원한다면 도움받기를 할 수 있고, 연계해서 25개 자치구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대면 상담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역시 보건건강국에 소속된 정신건강과를 중심으로 증진 사업과 치료 지원, 고위험군 발굴·관리, 자살 예방, 응급 대응, 인프라 확충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역시 도내 정신응급의료기관을 지난해 6개에서 올해 10개로 확대 운영하고, 청년·노인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외래 치료비를 지원하는 ‘마인드케어’ 사업 대상을 청소년까지 확대하는 등 정신건강 지원 확대 정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경기도는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를 공공 정신건강 서비스의 컨드롤타워로 두고 있다. 또 지역에 아동·청소년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트라우마센터, 정신재활센터 등의 기관이 운영 중이다. 홈페이지(G-mind)에 정신재활시설 입소 현황을 공개하면서 접근성 강화를 유도한 점도 눈에 띈다.
■ 정신건강 증진 정책 확대는 긍정적...예산·인력 부족, 인식 전환은 과제
전문가들은 직장인을 비롯한 국민 정신건강 증진에 공공(公共) 역량이 확대되고 있는 데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정신건강 증진과 국민행복 실현은 국가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경기 불확실성 확대 속 많은 국민들이 심리·경제적으로 위축돼 있다는 걸 고려하면 정부·지자체의 지원 강화 필요성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다만 여전히 부족한 예산 수준, 이에 따른 인력 확충 지연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그동안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국민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 이들을 지원할 인프라와 전문가 규모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 122조3779억원 중 보건 분야에는 17조4660억원이 배정됐다. 이 중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5275억원으로 전체 보건 예산의 3%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 배정 예산을 전체 예산의 5%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의료계 인력도 태부족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강은미 전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정신과 의사 수는 2020년 기준 0.08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통계가 있는 OECD 29개국 평균(0.1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보다 정신과 의사가 적은 건 멕시코(0.01명)와 콜롬비아(0.02명), 터키(0.06명) 등 3개국 뿐이었다.
이와 함께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업무 과중과 조직 관계, 사회적 시선 등을 의식해 선제적인 정신질환 예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정신건강 인식 개선에 대해서는 접촉과 교육, 항의 등 세 가지가 세계적으로 연구되는데 성인의 경우 접촉이 제일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편견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마음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와 접촉하거나 연결되게 하는 정책”이라고 제언했다.
백 교수는 이어 “정신과를 스스로 오는 경우와 가족 등이 데려오는 비중이 과거에는 3 대 7 정도였는데, 지금은 7 대 3 정도가 됐다. 과거에 비해서는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충분하지 않다”며 “우리 사회가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자기 몸이나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신건강을 말할 수 있는 학교나 직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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