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기획 : 직장인 정신 건강 현주소 ④]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세상에 어디쯤 와 있는지 알면 용기 난다”
“우울장애가 끔찍한 건 행복한 순간이 줄어든다는 것”
“우울장애 치료후 삶이 좋아지는 사람이 많다”
“건강한 사람은 내가 현실을 즐기며 살아간다”
최근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 가운데 특히 4차산업 종사자들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3차 산업이 중심이던 과거 1980~1990년대까지는 정신 건강 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을 사실상 찾기 어려웠다. 정신보다는 육체 중심의 노동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중증 이상 환자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 장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치료를 위해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가 사회 문제로 인식 자체가 전환되고 있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기업 등의 사례를 총 15회에 걸쳐 보도하며 우리 사회와 직장에 작은 걸음이나마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직장인들이 정신 건강 이상을 느끼고도 치료 시기를 놓쳐 악화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상당수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선입견과 치료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권순재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을 27일 만나 정신 건강 이상 원인과 치료법 등 다양한 얘기들을 들어봤다.
권 원장이 수련의 시절인 지난 2009년 만해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들은 조현병과 양극성 정동장애, 지적기능저하, 중증 우울장애, 알코올 중독 등의 병을 앓고 있었다. 대부분 가정에서 보살필 수 없는 경우들이였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정신 건강 이상 초기 단계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권 원장의 병원이 위치한 서울 강남역 일대만해도 15개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 있을 정도라 현실을 실감케 했다. 또 환자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권 원장은 “하루에도 진료 진료 문의가 굉장히 많다”면서 “재수생과 IT개발자, 기획자, 변호사 등의 직업군에서의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시생과 재수생, 취준생 등에게서 정신 건강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절박함 때문이다. 시험에 통과하면 모든것을 얻지만 그러지 못했을 경우 박탈감이 크다. 또 주변의 20~30대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혼자만 시험본다는 생각이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변호사들의 경우 완벽한 변론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의뢰인의 원망을 듣기 일쑤”라면서 “타인에 대한 부정적 얘기를 많이 듣기 때문에 뇌의 기능이 떨어지고 버티다 못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 다음은 권 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Q. 직장인들이 주로 우울장애와 공황장애, 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가
A. 젊은 직장인들은 신경증을 호소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질환은 ‘정신증’과 ‘신경증’으로 나뉜다. 정신증은 세상을 이상하게 받아들여 환청과 망상 등의 증세를 보인다. 신경증은 정신 기능이 저하된 것으로 우울장애와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가 대표적 질병인데 발병 원인은 비슷하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흔들리지 않으며 극한 상황에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평온을 유지하는 사람은 뇌가 일을 많이 한다. 뇌가 많이 움직인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다.
정신 건강 이상을 을 호소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뇌 기능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과 피로 등에 인한 기능 저하로 볼 수 있다. 정신은 영적인 부분이 아니라 근육과 비슷한 것으로 기능이 저하되면 노력(휴식, 치료)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Q. 우울장애와 공황장애 등 치료하는 방법
A. 뇌 신경에 가소성(可塑性)이 떨어지면 정신 건강 이상 상태다. 치료는 깁스(Gips)와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된다.
공황장애는 우울장애의 하나의 증세라고 볼 수 있다. 힘든 데 말할 수 없거나 지쳤는데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은 공황이 대신 정지시켜주는 것이다. 대부분 인생에서 내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목도할 때 공황장애라는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증상과 공존하는 법을 알려주고 또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치료할 수 있게 유도한다. 예를 들어 매 맞는 아내에게 남편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환자(아내가) 스스로 납득할 만한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현대인들이 최소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현재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우울장애 환자는 과거와 미래라는 생각에 빠져산다. 우울증장애 환자는 내가 어떨지에만 생각한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현실을 즐기고 살아간다.
우울장애가 끔찍한 건 행복한 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Q. 정신 건강 이상 증세를 방치하는 게 위험한 이유는 극단적 선택 때문이다
A.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어휘 보다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했다.) 인간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 자살할 이유가 없어서 사는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이나 지그문트 프로이트(오스트리아 심리분석학자) 등이 “인간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끌려다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자살은 “죽음이 매력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자살하지 않은 척도는 신념과 미래 기대, 죽음 공포, 가족 걱정 등이다. 이것들이 희미해지면 죽음과 가까워 진다. 신념과 미래 기대는 개인 스스로의 문제이며 죽음의 공포와 가족 걱정은 타성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정신은 몽환적이거나 영엄한 게 아니다. 구조화시켜 환자가 다룰 수 있게 해야 된다. 헬스나 PT를 하면 있었는 줄 모르는 근육들이 강화되 듯 정신을 움직여 모르는 영역을 발전시켜야 된다.
우울장애를 환자들은 치료 이후 삶이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세상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 알게 되면 용기를 낼 수 있다.
Q. 정신 건강 이상 전조 증세를 알면 치료가 쉽나
A. 진단이 확실하게 내릴 수 있는 병은 증세가 심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암 4기 환자는 진단이 확실하나 병이 심하다.
범불안장애의 경우 불안이 패턴화됐다면 증세가 오래됐다는 얘기인데, 증세가 심해지면 매일 이성을 잃는 듯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직장인들의 경우 감정 조절이 안되고 화가 많이 나거나, 아침에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고, 머리 회전이 안되며, 기억력이 감퇴하고, 가슴 압박감과 목에 이상한 느낌이 있다면 정신 건강 이상을 살펴봐야 한다.
정신 건강 이상도 조기에 발견하면 예후가 좋아질 수 있다. 또 환자가 의사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 치료를 잘 끌고 갈 수 있게 된다.
Q. 정신건강 이상을 주변에 알리는 게 예후가 좋나
A. 주변에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알리는 게 중요하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산부인과처럼 수치심이 유발될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의사)에게 자신의 것을 알리는 게 쉽지 않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하지 않다. 나를 사랑해주고 상처주지 않은 사람에게 알리는 게 좋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것은 문제 있다는 것이 아니다. 우울장애와 공황장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질병이 아니다. 사회가 인종차별하는 사람을 저질로 바라보 듯, 환자들에게 나르시즘에 젖어 비난하는 것은 저질이다. 정신질환은 함부로 언급하는 게 아니다.
Q. 직장인들이 정신 건강 이상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많나
A. 정신건강검진센터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도로 그려 줄 수 있는 센터 등을 방문하는 게 좋다.
국내에는 ‘브레인맵 심리검사센터’가 대표적 케이스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임상심리 전문가가 개발한 브레인맵 검사 도구를 통해 과학적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는 심리검사센터다.
브레인맵은 50만명 이상의 데이터를 갖고 있는 생성형 AI가 분석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심리검사로 현재 국내 200여 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고 있다.
기업에서 정신건강센터에 의뢰해 직장인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인사평가에 반영 안하고 의사만 볼 수 있게 하면 좋다. 의사의 치료적 접근이 필요한 직장인에게만 병원에 연결시켜주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Q. 정신 건강 악화 예방을 위해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방법
A.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스트레스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출근하는 걸 힘들어 하니 편하게 일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출근을 안한다는 것은 퇴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직장인의 정신 건강 이상 사례가 증가했다. 일이 끝나면 머리가 비워져야 하고 퇴근한 직원들 찾지 않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정신은 뒷통수로 비유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있어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을 정의하지 않는 사람과 자신을 공유하는 게 큰 도움 된다. 마음의 어떤 부분은 타인의 말로 선명해지기도 한다.
정신은 신비한 영혼이 아니다. 정신을 다루는 것도 실력이다. 예를 들면 분노와 공포는 같은 것이다.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면 공포도 스스로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증세가 심각한 사람들은 치료를 안 받고 버티다 삶이 망가지는 것이다.
■ 권순재 원장 프로필
(전)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전임의, (전)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및 치매전문센터장, (전)효성 인지재활센터 센터장, (현)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현)브레인맵 심리건강센터 강남점 대표 (현)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