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거듭된 금융사고...내부통제 강화 ‘공염불’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고객의 자금을 관리하는 은행에서 횡령과 배임 등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동안 은행들은 자체적인 감사나 제도 강화로 내부통제 강화에 나섰는데 영업 현장 곳곳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를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
24일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은행권 경영공시를 종합한 결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지난해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36건으로 집계됐다. 국민·하나은행이 각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농협은행은 각 6건, 우리은행은 4건의 금융사고가 터졌다.
지방은행 중에선 BNK부산·BNK경남·DGB대구·전북은행에서 지난해 11건의 금융사고가 일어났다. 광주은행은 지난해 금융사고 발생 건수 0건을 기록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업계는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지난해 금융사고 건수가 각각 2건, 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토스뱅크는 지난해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은행권 금융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규모도 갈수록 커져가는 흐름이다. 지난 2022년 우리은행 직원이 약 700억원 규모의 돈을 횡령한 데 이어 지난해 경남은행에서는 약 3000억원에 달하는 횡령 사태가 터졌다.
횡령 뿐 아니라 배임 사례도 잇따랐다. 농협은행은 지난 3월 영업점에서 발생한 약 110억원의 배임을 포착하고 추가로 자체감사를 벌인 결과 최근 약 64억원 규모의 배임 2건을 또 발견했다. 국민은행에서도 지난 3월과 4월 대출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배임이 발생했다.
은행권은 최근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금융사고에 대응해 대대적인 내부통제 강화에 나섰다. 직원들의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순환근무·명령휴가 같은 제도 역시 손질했다. 이와 함께 감사·준법 인력 확대로 촘촘한 감시망도 구축했다. 다만 은행권 안팎에선 이 같은 노력에도 금융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긴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예전에는 영업점에서 서류가 밀려들어올 때 결재자가 정신없이 보다보면 금융사고를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사람의 손을 타는 업무에서 안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작정하고 일을 꾸미면 발견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은행 계열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이사회 등과 잇따라 만나면서 내부통제 강화를 압박하고 있다. 건전한 내부통제는 금융의 생명인 ‘신뢰’와 직결된 만큼 각 회사의 적극적인 제도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기대를 걸고 있는 건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책무구조도’다. 책무구조도는 개별 임원에게 담당 직무에 대한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배분한 걸 명시한 문서로, 은행들은 오는 7월까지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건 금융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에 대한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것이다. 담당 임원은 물론 CEO도 제재 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 이 제도가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당초 은행권 일각에선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 과도한 경영 위축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다만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금융사고로 오히려 제도 도입 당위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가장 효율적인 책임 배분이 될 수 있게 작업 중인데, 은행마다 조직 구성이나 규모가 다르다보니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