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 통해 행복한 시간 만들어요"
[뉴스투데이=김연수 전문기자]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신 음식들은 훗날 나이 들어서 까지 미각을 좌우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그런 음식들은 정서나 성격까지도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어릴 때 먹은 특별한 맛과 냄새가 뇌에 박힌 음식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식성을 지배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이처럼 강렬한 맛은 대부분이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맛에서 형성되는 법이다. 그래서 유년에 경험한 좋은 추억 중에는 어머니의 손맛과 관련된 기억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비록 가난한 살림살이로 음식 자체는 초라할지라도, 학교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가 부엌에서 지지고 볶고 끓여낸 한 그릇의 음식을 마주하면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기는 듯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자녀에게 큰 위안을 주는 것은 단순히 음식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마질 소리, 그릇들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 등등 부엌에서 나는 이런저런 소리를 비롯해 음식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는 어머니의 모습까지도 모두 자녀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안식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돼 독립한 후에 어머니의 손맛을 맛볼 수 없게 되어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 맛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몸이 아플 때는 부엌일이 서툴더라도 어릴 적 먹은 익숙한 맛이 그리워서 더듬거리며 재현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써게 된다. 그래서 흔히 어머니의 손맛을 일러 고향의 맛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일련의 현상은 어쩌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탯줄을 통해 학습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예로부터 임산부의 태교 중에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포근한 손맛도 점차 기억에서 떠나버리고 단지 신비로운 맛들이 돼 버렸겠지만, 그래도 살다 보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맛들이 있다. 그런 맛들은 하나 같이 어머니의 수저를 통해 어린 자녀의 입으로 전달됐을 테고 어른이 돼서는 의식 바깥으로 밀려 있을 미각의 주인공들이다. 숨어 있을수록 더 생각나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되는 소중한 맛일 것이다.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그 순간처럼 크나큰 기쁨이 없다는 말이 있다. 세상 어머니들의 자식을 향한 이러한 사랑과는 모순되게도 소설가 윤대녕은 "자식은 스스로 수저질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손을 거부하게 된다. 이는 몹시도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의 이치이기도한 것 같다. 자식이 부모가 되어 어머니의 손길을 맛볼 수 없을 때 비로소 그 슬픔은 한없는 그리움으로 승화되는 법이다"고 말했다.
요즘 엄마들이야 미디어를 통해 소문난 맛집들을 삼삼오오 순례하며 맛 기행을 즐기는 게 대세이지만, 우리 어머니와 그 어머니 세대만 해도 당신이 알고 있는 음식은 고작 자기 손으로 만든 음식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외식문화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지 않은 그 옛날 어머니들은 어쩌다 외식을 해도 기껏해야 동네에 있는 중국집 정도였을 것이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외식은 자식 입을 즐겁게 해주는 기쁨 말고는 쓸데없는 데 돈만 쓰는 낭비로만 여겨졌다. 어쩌다 가족들과 중국집에 가더라도 가격부터 확인한 후 자식이나 남편이 어떤 음식을 먹자고 하면 따라먹는 정도였을 것이다. 요즘 학교나 학원가 브런치 식당(아침 겸 점심을 판매하는 곳)이나 소문난 맛 집마다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엄마들과는 하늘과 땅처럼 너무나 다른 모습들이었다.
가끔 옛 어머니들의 소극적인 외식 취향이 막연히 그리운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도 ‘나이를 먹었다’는 퉁박을 들어도 좋다. 사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서 투박한 부뚜막 밥상의 정겨움은 경험해 보지는 못했어도 그 깊은 손맛에서 우러난 건강하고도 따뜻한 맛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그저 세월이 알려주는 지혜 덕분이다.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 음식 취향이 보수적이 되어가 평생 혀에서 익숙한 음식들을 찾는다. 듣도 보지도 못한 음식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아무리 외식문화가 다양해지고 발달해도 이따금 옛날 어머니들의 촌스럽고 소박한 손맛이 그냥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날이 있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하루 정도는 시간을 넉넉히 내어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통해 행복한 시간을 교감해 보는 의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
◀ 김연수 프로필 ▶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 학사 / 前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 /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과정 강사 / 저서로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