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오른다...은행 ELS 손실·배상 규모 줄어들까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를 야기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급락세가 멈춘 뒤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다. 지수가 연초보다 30% 이상 오르면서 이와 연계된 ELS 손실 규모도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손실 투자자들에 대한 배상을 준비·집행 중인 은행들도 홍콩H지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일 홍콩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홍콩H지수는 전일 6550선을 형성했다. 이는 올 1월 22일 종가인 5001.95보다 약 31% 오른 수준이다. 올해 들어서는 1~3월 5000선을 보이다가 4월 10일 6000선에 진입한 뒤 현재까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신(新) 국9조’가 홍콩H지수 상승세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이른바 ‘중국판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으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상장사의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걸 골자로 한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침체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내에서 홍콩H지수에 관심을 가지는 건 이 지수와 연계된 ELS 상품에서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ELS는 특정 주식이나 지수에 연계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파생상품인데, 기준으로 삼는 지표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까지 잃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은 약 15조4000억원이며 올 상반기 만기 도래액만 약 8조7000억원에 달한다. 통상 ELS 상품의 만기가 3년인 걸 고려하면 2021년 상반기부터 팔려나갔다는 건데, 당시 홍콩H지수는 1만2000선이었다.
최근 홍콩H지수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ELS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 규모도 조금이나마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은행권의 하반기 홍콩H지수 ELS 만기 도래액 약 4조5000억원에 지난 3월 손실률인 50.1%를 적용하면 예상 손실 규모는 약 2조2545억원이다.
다만 은행권에선 홍콩H지수가 6500선을 유지만 해도 손실률이 40%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반영하면 예상 손실 규모는 약 1조8000억원이다. 홍콩H지수가 지금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고 지탱해준다면 손실액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나아가 아예 원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홍콩H지수가 가입 당시의 65~70% 수준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기준을 1만2000으로 잡았을 때 홍콩H지수가 적어도 7800선 이상으로 오르면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다만 연내 홍콩H지수가 이 정도 수준까지 오를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홍콩H지수를 포함한 중화권 증시 반등에는 (중국 정부의) 부양책 효과가 크게 작용 중”이라며 “중국 경제의 구조적 리스크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단기적으로 중국 경기와 관련된 불확실성은 일부 완화되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LS 투자자들 뿐 아니라 은행권도 홍콩H지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들의 홍콩H지수 ELS 취급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사례가 대거 적발됐고, 은행의 책임이 인정돼 원금 손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율배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홍콩H지수 ELS 자율배상을 위해 총 1조6550억원을 충당금 형태로 올 1분기 실적에 반영했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 8620억원 △농협은행 3416억원 △신한은행 2740억원 △하나은행 1799억원 △우리은행 75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홍콩H지수 오름세가 이어진다면 추가 충당금 적립에 대한 불확실성도 해소될 수 있다는 평가다. 나아가 하반기부터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 규모가 줄어들면 미리 적립한 충당금을 환입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주요 은행은 올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홍콩H지수 움직임을 봤을 때 추가 손실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알린 바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당분간 홍콩H지수가 연초 수준만큼 폭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있고, 투자자 배상금도 보수적으로 준비해 놨기 때문에 재무적으로 추가적인 부담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은 원만한 배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