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 ELS 배상에 은행 실적 꺾이나...“충당금 변수”

유한일 기자 입력 : 2024.03.21 08:28 ㅣ 수정 : 2024.03.21 08:28

5대 은행 조만간 홍콩H지수 ELS 배상 나설 듯
은행별 수천억 원대 예상...영업외비용으로 반영
고금리 수혜 실적 성장세 둔화될 가능성도 제기
건전성 악화에 충당금 변수도...수익성 악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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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본점 전경. [사진=각사]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지난해까지 고금리 수혜로 역대급 실적을 세운 은행권이 올해는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악재에 맞닥뜨렸다. 원금 손실 투자자들에 물어줄 배상금이 재무상 비용으로 처리돼 순이익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 악화에 따른 자산 건전성 악화가 가속할 경우 실적 둔화 압박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금융감독원의 ‘홍콩H지수 ELS 분쟁 조정 기준안’을 토대로 배상 규모 및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 중 은행권 배상안 윤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 15조4000억원 중 올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건 8조7000억원(56.5%) 규모다. 올 1~2월 은행권 만기 도래액 1조9000억원 중 1조원이 이미 손실 처리됐다. 손실률은 52.6%에 달한다. 

 

홍콩H지수 ELS 현황 조사에서 ‘불완전 판매’ 사례가 다수 확인된 만큼 은행권의 배상 책임은 불가피하다. 투자자별, 사례별로 차이는 있지만 원금 손실 규모가 조(兆) 단위인 만큼 배상액도 수백,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종 배상비율을 30~40% 내외로 가정했을 때 자율배상 규모가 △KB국민은행 7000~9000억원 △신한은행 3000억원 내외 △하나은행 2000억원 초반 수준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이 가장 작은 우리은행의 경우 100억원 안팎의 자율배상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농협은행은 1000억원대의 배상금이 추정된다. 

 

증권가에선 은행권이 홍콩H지수 ELS 배상금을 재무상 ‘영업외비용’으로 반영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거 사모펀드 사태 관련 배상이 주로 영업외비용으로 처리된 게 근거다. 4월부터 배상이 시작된다고 가정했을 때 2분기 실적에 비용 반영이 집중될 수 있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만기 도래와 책임 소재를 따져 배상이 진행될 텐데 비용 처리가 되면 당연히 실적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시장에서 파생상품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지고 한동안 판매도 부진할 걸로 보이기 때문에 꽤나 큰 악재인 건 맞다”고 말했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4조1023억원으로 전년(13조8482억원) 대비 1.8% 증가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이익이 큰 폭 늘고 수수료 등 비(非)이자 이익도 성장한 결과다. 다만 올해는 홍콩H지수 ELS 배상금이 반영되면서 실적 성장세는 주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KB국민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3조2615억원인데, 홍콩H지수 ELS 배상금을 7000억원으로 반영하면 올해 3조원대 순이익 달성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예상 배상금을 3000억원으로 잡으면 지난해 당기순이익(3조677억원)의 9.8% 규모가 지출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갈수록 커지는 대손충당금 적립 압박도 변수로 지목된다. 그동안 누적된 고금리 충격에 가계·기업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데다 경기 둔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 등 은행 자산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지난 2022년 0.21%에서 지난해 0.29%로 0.08%포인트(p) 상승했다. 총여신에서 3개월 이상 연체돼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NPL)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0.22%에서 0.27%로 0.05%p 올랐다. 

 

시중은행을 핵심 계열사로 둔 5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적립한 충당금은 11조949억원으로 전년(5조8853억원)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충당금은 잠재 부실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쌓고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나중에 환입할 수 있지만, 당장은 비용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순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충당금 적립 축소로 홍콩H지수 ELS 배상금 지출을 상쇄하는 것도 건전성 개선과 경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금융당국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올해도 최대한 많은 충당금을 적립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 하반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금리가 하락하면 은행권 이자 이익도 둔화될 것이란 관측이다. 배상금과 충당금 등 지출 규모가 커지는데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면 수익성 지표도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는 시장금리 하락 가능성이 높아 순이자마진(NIM)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코로나19 기간 동안 급증한 대출의 부실 위험 증대 및 부도시손실률(LGD) 상향이 대손 비용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아 국내 은행 수익성이 다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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