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 삼성전자 3년 공들인 일체형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 세계 제패 노린다
전소영 기자 입력 : 2024.03.12 05:00 ㅣ 수정 : 2024.03.12 05:00
세탁과 건조 한 번에 해결하는 '비스포크 AI 콤보' 공 3년 노력 끝에 제품 성능 유지하며 에너지효율 높인 제품 내놔 LG전자 제품보다 가격 절반 수준...올해 미국·유럽·동남아 시장 공략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전자가 3년동안 칼을 간 '역작(力作) 가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세탁부터 건조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비스포크(Bespoke:고객 맞춤형) AI(인공지능) 콤보’가 그 주인공이다.
일체형 세탁·건조기는 10여년 전에 시장에 처음 등장했지만 제품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결국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비스포크 AI 콤보는 드럼 하나로 세탁과 건조를 모두 처리하는 제품 특징 때문에 소비자의 잠재수요을 안고 있었다.
이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따로 설치하면 두 제품이 차지하는 공간이 많은 데다 세탁후 건조기로 빨랫감을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고민은 깊어졌다. 세탁기와 건조기의 구조적 차이로 단일 제품 대비 성능이 뒤떨어지는 일체형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3년간 노력 끝에 단일 제품과 같은 성능을 지니면서 에너지효율까지 챙긴 비스포크 AI 콤보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비스포크 AI 콤보는 일체형 최대 열교환기와 새로운 건조 알고리즘 등 하드웨어(HW)부터 소프트웨어(SW)까지 대대적인 혁신으로 출시 초반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품 개발을 담당한 이무형 삼성전자 DA(디지털 가전)사업부 CX(소비자경험)팀장(부사장)은 11일 서울 중구 삼성전자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비스포크 AI 콤보 출시 배경과 혁신 기술력, 3년간에 걸친 개발 기간 동안 숨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1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가전 시장을 조사할 때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일체형 세탁·건조기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체형 세탁·건조기는 10여년전 처음 등장해 한때 가전업계 대세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현재 가전 시장은 분리형 세탁·건조기가 대세다.
특히 당시 출시된 일체형 세탁·건조기는 모든 과정이 끝나는데 3~4시간씩 걸렸으며 건조 성능이 떨어지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일체형 제품에 등을 돌리게 됐다.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는 일체형 세탁·건조기를 기획하며 단일 제품과 동일한 성능, 에너지 효율 향상 등을 목표로 세워 연구를 거듭한 결과 비스포크 AI 콤보를 탄생시켰다.
비스포크 AI 콤보에는 기존 드럼세탁기와 같은 크기의 드럼을 사용했다. 국내 사용자가 사용하는 일반 건조기 용량은 6kg 이내가 대부분이지만 비스포크 AI 콤보는 15kg의 대용량 건조를 목표로 했다.
이에 힘입어 비스포크 AI 콤보는 수건 50장(6kg)에 해당하는 분량을 일반 건조기 수준으로 건조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존 열풍건조 방식 일체형 세탁·건조기의 옷감 손상 문제에 주목했다. 그리고 단독 건조기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추기로 하고 일체형 세탁·건조기 기준 최대 수준의 히트펌프 기술을 개발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기존 건조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히트펌프(컴프레서+열교환기)를 상단에 최적화한 형태로 설계해 배치했다. 또한 기존 상단에 있던 세제 자동투입 장치는 하단으로 옮기는 등 제품 설계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AI 콤보에 고효율 인버터 히트펌프를 갖춰 최적의 부품 설계를 적용했다.
히트펌프는 냉매 순환을 통해 공기 온도·습도를 바꿔 옷감 수분을 날리는 방식이다. 건조한 공기가 드럼 안을 순환하며 빨래를 말리고 빨래를 거친 습한 공기는 열교환기를 통해 습기를 제거한다.
삼성전자는 일반 21kg 건조기와 같은 크기의 대용량 열교환기를 설치해 순환하는 공기의 접촉 면적을 넓혀 빨래가 잘 마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밖에 ‘터브 일체형 유로(공기 순환) 구조’라는 특허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일체형으로 기존 대비 절반 수준의 설계 공간이 필요하지만 기존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와 비교해 공간을 줄이면서 많은 부품을 집약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이와 함께 옷감을 건조할 때 온도가 60도를 넘지 않도록 제어해 옷감 수축 우려를 줄이고 직수로 제품 내부에 연결돼 강한 물살로 열교환기를 세척하는 ‘직수 파워 오토 클린’ 기능을 적용하는 등 사용자 편의를 극대화하는 섬세함도 갖췄다.
비스포크 AI 콤보는 고성능 제품이지만 에너지 절약도 고려됐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제품은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이다. 하지만 1kg 물량을 세탁하면 소비전력량이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최저 기준보다 40% 낮아 에너지 효율이 매우 뛰어나다.
삼성전자는 에너지 효율 극대화를 위해 세탁은 찬물에서도 빠르고 깨끗하게 빨래할 수 있는 ‘에코버블’ 기술을 갖췄고 건조는 이미 언급한 고효율 히트펌프를 설치했다.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사용해 ‘AI 절약 모드’를 설정하면 세탁은 최대 60%, 건조는 최대 30%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스마트폰 '갤럭시 S24' 출시로 얻게 된 ‘AI=삼성’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비스포크 AI 콤보는 고성능 칩과 타이젠 OS(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다재다능한 AI 기능을 뽐낸다.
7형의 대화면 디스플레이는 세탁·건조를 제어하는 한정된 역할을 뛰어넘어 스마트 가전·기기를 바로 제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가정주부는 터치스크린으로 집안일을 하며 놓치기 쉬운 전화나 문자를 수신하고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제품 기능을 무선으로 업데이트하기 때문에 마치 새 제품을 사용하는 듯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이무형 부사장은 “비스포크 AI 콤보 개발을 시작할 때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목표를 높이 잡아 완성된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며 “‘소비자를 위한’, ‘소비자 경험을 반영한’ 비스포크 사상의 정점에 있는 제품”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국내 가전업계에서 삼성전자의 숙명의 라이벌 LG전자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시기에 일체형 세탁·건조기 모델 ‘LG 시그니처 세탁건조기’ 판매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두 회사 제품 간의 성능과 가격을 비교할 수 있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한 예로 LG전자 시그니처 라인 가격은 690만원이며 일반형 모델은 4월 중 출시할 예정으로 가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삼성전전 비스포크 AI 콤보는 399만원이다.
삼성전자가 경쟁사 절반 수준의 가격으로 어떻게 고사양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여기에는 소비자의 다양한 경험에 대한 삼성전자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무형 부사장은 “기존 세탁·건조기를 사용한 분들에게 비싼 가격에 경험을 하도록 하고 싶지 않았고 AI 기능을 큰 가격상승 없이 다양한 소비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 면에서 적정 수준의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추가 라인업(제품군)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비스포크 AI 콤보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 국내처럼 대형 가전이 친숙한 미국을 비롯해 동남아, 유럽 등 다양한 시장으로 사업무대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이 부사장은 “한국과 미국을 주력 시장으로 삼고 미국은 이번달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라며 “동남아와 유럽 등도 올해 2분기 내 진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 진출은 도전이다. 예를 들어 유럽은 한국보다 작은 제품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설치환경 등 제약이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에너지효율 등 다른 편의와 사양을 앞세워 시장을 바꿔나가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