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 'ELS 발행' 감소…증권사, 수익성 타격 커지나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여파로 증권사들의 ELS 발행 규모가 감소세다. 주요 시중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이 ELS 판매를 중단하면서다. 이에 증권사들의 ELS 관련 수익성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홍콩 ELS 문제와 관련해 판매 금액이 적어 상대적으로 비난 여론의 초점에서 벗어나 있던 증권사들이 투자자에 직접 판매하는 것보다 은행권에 주로 공급했던 핵심 판매 창구가 사라진 상태다.
ELS 판매사가 투자자 손실을 자율 배상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은 ELS 시장이 장기간 위축될 수 있는 요인인 만큼, 해당 증권사들의 발행 규모는 더욱 줄어들 수 있어 긴장감이 돌고 있다.
5일 금융감독원의 증권사 ELS 발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9조7000억원 △2분기 12조2000억원 △3분기 9조9000억원이었다. 2분기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전환했으며, 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홍콩H지수 ELS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증폭된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H지수 ELS 발행액 급감은 전체 ELS 시장 위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유안타증권 리서치팀은 올해 1월 증권사의 홍콩H지수 ELS 발행액은 351억원에 불과했다. 그간 전체 발행액에서 홍콩H지수 비중은 20%대를 유지했다가 지난해 12월 14%, 지난달에는 2%로 대폭 줄었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ELS 발행액 감소 배경에는 홍콩H지수로 인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며 "홍콩H지수 관련 대규모 만기 손실이 발생되거나 예상되면서 ELS 발행 자체가 위축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LS 발행액이 급감한 원인은 2021년 판매된 홍콩H지수 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올 들어 주요 은행들이 ELS 판매를 중단했다. ELS를 발행해 모인 자금을 채권 등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냈던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에게 직접 ELS를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차 고삐를 죄는 분위기다.
증권사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ELS는 증권사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으로 발행이 줄어들면 증권사들의 자금조달 압박도 커지게 된다.
그간 ELS 판매를 은행에 의존해 왔던 증권사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흘러 나왔다. 통상 은행은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신탁계정으로 편입한 주가연계신탁(ELT) 형태로 판매해 왔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ELS는 '중위험·중수익' 투자처로 주목받으며 활황을 보였지만, 고금리 등에 ELS의 장점이 줄어들고 ELS 원금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수요가 위축되자 발행 규모가 점차 감소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ELS 발행잔액 40조1천억원 가운데 은행 신탁 판매 비중이 62.8%에 달할 정도로 ELS는 은행 판매에 의존해왔다. 은행의 판매 중단에 따라 ELS 시장이 위축되면, 증권사들은 수익 창출원을 잃는다.
ELS 같은 고위험 파생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은행의 ELS 판매 자체를 중단하거나 거점 점포 판매만 허용하는 등 규제가 예상된다.
ELS는 특정 주가지수에 연동된 증권으로 만기 때 가입 당시와 비교해 지수가 70%를 넘으면 원금과 높은 이자를 돌려준다. 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원금마저 손실을 볼 수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이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가운데 50개 종목을 추려서 산출하는 지수로, 변동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발행된 당시 정해진 기간에서 기준점 이하로 기초자산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투자자는 미리 약속한 수익률을 챙겨 상환받을 수 있다.
이에 ELS를 설계·운용하는 증권사의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에서는 세일즈앤트레이딩(S&T) 부서가 투자자 상환자금을 확보하는 헤지(위험회피)를 하게 되는데, 증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자체 헤지 비중이 50∼60% 정도로, 약정 수익률에 미치지 못하면 이는 증권사가 손실로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인력을 축소하고 있다는 후문도 나온다. 또한 ELS 영업 축소로 인한 수익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금이나 유가 등 비교적 안전한 자산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파생결합증권(DLS)을 강화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개별 주식이나 주가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만들어진 ELS와 달리 DLS는 이자율이나 환율, 실물 자산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증권이다.
해외 부동산 평가손실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충당금 적립 등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그 여파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각 사 기업설명(IR) 자료에 따르면 작년 잠정 실적을 발표한 증권사 자기자본 상위 7개사 가운데 5곳이 연결 기준 4분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주요 증권사들이 연이어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적표를 공개하면서 ‘1조 클럽’ 증권사는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올해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데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까지 겹쳐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판매의 절반 이상은 은행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은행에서 이를 팔 수 없다면 채권운용 규모도 감소한다"며 "한국금융지주나 NH투자증권은 발행어음이라는 대체 조달 수단이 있지만 다른 증권사들은 아니기 때문에 규제 현실화 시 재무레버리지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과 증권사 등을 상대로 홍콩 ELS 불완전 판매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2차 현장검사 기간을 일주일 연장해 이번 주까지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