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의대 정원 증원, 공공 의대 설립이 답”
의료단체와 비정부기구(NGO)를 중심으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에서 의사 수가 부족한데다 지역별 의료 수준 격차가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선진국보다 우리나라가 의사 수도 많고 의료 수준도 수준급이라며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한 의사 수를 늘리자는 목소리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의사 수 부족으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의사 수 부족과 관련해 전문가 연쇄 인터뷰로 해법을 찾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보건의료노조는 의사 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의과대 정원을 해마다 1000명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측은 의사 수 부족 문제가 해결된 다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의대 정원 축소를 논의해도 된다고 제언한다.
한 명의 전문의가 양성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10년 후 의료 환경을 고려해 의대 정원을 해마다 1000명 증원하는 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를 제외한 국내 의료 기관 종사자 8만5000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는 전국 산별 노조여서 이 단체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한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에 가장 적극 찬성하고 있는 단체로 대한의사협회의 대척점에 서 있다.
뉴스투데이는 5일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을 만나 의료 기관 근무자들이 일선 현장에서 부딪히는 의사 수 부족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을 들어봤다. 박민숙 위원장은 "의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료 현장의 파행 진료와 불법 의료를 근절할 수 없으며 환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 유령 간호사 2만 명 시대, 의사가 2만 명 부족하다는 역설
박 위원장은 큰 논란이 된 'PA간호사(수술보조간호사‧전담간호사)'의 수술 문제부터 먼저 꺼냈다. PA간호사는 소위 유령 간호사로 불리며 의사 부족으로 대리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조사한 결과 PA간호사는 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 387명과 충남대병원 284명, 이화의료원 249명 등 순으로 많았다.
박 위원장은 "의사 수가 현저하게 부족하다보니 PA간호사들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리 수술과 시술, 처방 등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2만 명의 PA간호사들이 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의사 수가 2만 명 부족하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지방의료원‧특수목적공공병원 등 국내 101개 의료기관 중 72곳이 대리 처방을 하고 대리 동의서 서명 64곳과 대리 처치‧시술 54곳, 대리 수술 7곳 등을 하는 등 불법 의료가 판을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의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료 현장의 파행 진료와 불법 의료를 근절할 수 없고 환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고 진료를 정상화해야 된다는 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 현장의 절박한 절규"라고 강조했다.
■ 필수 의료인 부족, 의대 정원 증원만으로 해결할 수 있나
그는 또 피부과·성형외과·안과 등 필수 의료가 아닌 분야에 의사들의 쏠림 현상 심화도 꼬집었다. 외과와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필수 의료 분야에는 의사들이 지원을 꺼린다는 것이다. 피부과·성형외과에 비해 보수는 적으면서 노동 강도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환자 사망과 의료 소송 등에 대한 부담도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를 지원을 기피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외과의 경우 지원 의사들이 많이 줄었으며 교수들도 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면서 "필수 의료 분야는 소위 '3D' 업무로 분류되기 때문에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할 수 있는 피부과와 안과 등에 전문의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필수의료 진료과는 의사를 구하기가 어려워 의사수를 축소하거나 아예 폐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지역 공공병원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됐다. 또 종합병원급 이상에서 근무하는 필수 의료 진료과 의사 중 다수가 개원을 위해 사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필수의료 진료과 공백이 생기는 것은 물론, 내원환자들이 개원 의사를 따라 가 종합병원의 경영도 타격을 입게 된다.
의대 정원늘 늘리는 게 해법으로 거론되지만 정원 확대가 피부과·성형외과·안과 등에 의사들이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노조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공공의료 등을 살릴 수 있는 '패키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코로나19 펜데믹 시절 전담 병원인 전국 35개 의료기관이 붕괴됐다"면서 "“공공병원과 지역병원 의사를 늘리기 위해 의대 정원을 지금부터 늘려야 10년 후에 이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태로 의대 정원만 늘리면 돈벌이가 되는 피부과와 성형외과, 안과 등 비필수 인기 진료과에 의사들이 쏠리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 위원장 "OECD 데이터만으로 의료 수준 높다 할 수 없어"
의협은 통계를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좋다고 주장한다. 외래 환자 대기시간은 미국 이 24.1분인 반면, 우리나라 21분에 그친다. 또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OECD 평균 5.9회, 우리나라는 14.7회로 높아 의료 접근성도 뛰어나다는 게 의협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의협은 자의적 해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OECD 가입 국가보다 많은 것은 병상수가 과잉 공급된 상황이며 돈벌이를 위해 과잉진료를 한 결과"라면서 "의료시스템이 좋다고 볼 수 있는 지표가 결코 아니다"고 일갈했다.
박 위원장은 또 공공의료 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는 '치료 가능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는 오히려 낙후했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감기 환자가 병원에 한 번 가서 일주일치 처방을 받으면 완치되는데 의사는 3일 후에 다시 방문해야 된다는 식의 진료 관행이 팽배해 있다"면서 "이는 데이터 상 의료 접근성만 높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치료 가능 사망률은 OECD 평균과 비슷하고 충북 소속 의료기관은 의사 수가 적어 치료 가능 사망율 전국 1위다"면서 "결국 서울 빅5(서울·세브란스·삼성·아산·성모)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기형 상황이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의사가 오로지 의료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필수 의료 분야에 인력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협 의견에도 반론을 폈다. 의협은 필수 의료의 경우 소송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의사 뿐 아니라 많은 의료인들이 공감하고 있다.
반면, 보건의료 노조는 부주의나 명백한 과실, 불성실한 의료 행위 등으로 생기는 의료 사고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는데도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는 소송 부담을 완화하고 정부가 지원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박 위원장은"“모든 의료 사고에 무조건 부담을 경감해주거나 면책 특권을 부여하는 등의 지원은 안 된다"면서 "이렇게 될 경우 환자의 안전과 권리 침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박 위원장 "국민을 이기는 정부 없듯, 국민을 이기는 의사 없다"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 대통령실과 국회, 정부 모두 공감하면서도 의협과 의견 조율이 안된다는 이유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박 위원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의사 수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증원해야 한다고 공감하면서도 의협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의대 정원 증원은 필수 의료 붕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 과제"라면서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필수 의료 분야와 지방 병원에 종사할 의료 인력을 정부가 책임지고 양성하고 적정하게 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국민들(환자)이 갈 병원이 없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목숨을 잃고 피눈물을 흘리며 원정 진료 받으러 가고 있는데 의료 현장엔 의사가 없어 진료과를 폐쇄하고 의료 인력들이 불법 의료행위에 내몰리고 있는 게 의료 현장의 현실"이라면서 "의협은 아전인수 격으로 왜곡한 통계를 근거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프로필
1990년 대전성모병원 간호사 입사 / 1997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무효화 파업 주도로 징계 해고 / 2003년~2014년 보건의료노조 대전충남지역본부 3~6기 본부장 / 2015년~2023년 보건의료노조 7·8·9대 부위원장 / 2019년~현재까지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 의사 인력 확대 TF 담당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