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빈곤율 OECD 1위, 평균 수익률 10%인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해결책 될까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한국의 노인 빈곤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면서 퇴직 후 안정적인 노후 자금 운영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Pension at a glance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인 14.2%보다 3배 높았다. OECD가 노인빈곤률을 공개한 2009년부터 줄곧 1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오명을 안고 있다.
정부는 사회 여론이 거세지면서 늘어나는 노인 인구의 노후 경제 지원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를 시행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 또는 IRP(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을 직접하기 어려운 경우, 가입자가 사전에 지정한 디폴트옵션 상품(정부심의를 거쳐 승인)으로 금융회사가 적립금을 자동 운용해주는 것을 말한다.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DB(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은 해당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퇴직연금 가입자의 수익률을 높이고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 7월 도입됐고, 지난해 7월12일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노인의 퇴직연금이 낮은 금리의 유휴자금으로 방치되는 것을 막고 노인 스스로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금융 제도를 만든다는 방침인데, 지난해 한 해 동안 운영한 이 제도의 성과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퇴직 후 높은 수익을 통해 사회 안정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 고용부 관계자, " 디폴트옵션 상품의 수익률은 제도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이하 ‘고용부’)가 5일 발표한 디폴트옵션의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적립금액과 수익률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는 41개 금융기관이 300개 디폴트옵션 상품을 판매 중이다. 적립금액은 12조5520억원(DC제도 8조5993억원, IRP제도 3조9527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대비 7조4425억원 증가했다. 지정 가입자 수는 479만명으로 3분기 대비 약 88만명 늘어났다.
퇴직연금사업자별 적립금 규모는 ▷신한은행(2조5122억원, DC 1조4444억원+IRP 1조678억원) ▷KB국민은행(2조4064억원, DC 1조2904억원+IRP 1조1160억원) ▷IBK기업은행(1조4640억원, DC 1조2915억원+1725억원) ▷농협은행(1조4410억원, 1조519억원+3891억원) ▷하나은행(1조3704억원, 8770억원+4934억원) 순으로 많았다.
운용 중인 상품들의 지난해 연 수익률은 약 10.1% 수준(설정 후 1년 이상 된 디폴트옵션 상품의 개별 수익률을 산술평균한 값)으로 목표수익률인 연 6~8% 보다 높은 성과를 나타냈다. 지난해 불안정한 금융시장 상황 속에서도 디폴트옵션이 수익률 상승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위험률이 높을수록 수익이 많았다. 위험등급별 수익률은 ▷고위험 14.22% ▷중위험 10.91% ▷저위험 7.69% ▷초저위험 4.56% 순으로 높았다.
1년 수익률 기준으로 위험등급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을 살펴보면 고위험은 ‘KB국민은행 디폴트옵션 고위험 포트폴리오1’(20.01%), 중위험은 ‘KB손해보험 디폴트옵션 중위험 TDF1’(14.65%), 저위험은 ‘삼성증권 디폴트옵션 저위험 포트폴리오2’(11.19%), 초저위험은 ‘삼성생명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원리금보장상품’(5.25%) 등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고위험일수록 수익이 높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제도 도입의 주된 목적이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인 만큼 디폴트옵션 상품의 수익률은 제도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며 “정부는 안정적인 수익 실현이 가능하도록 더욱 내실 있게 제도를 관리·운영해 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노인 인구의 소득 증대를 위한 금융 제도를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퇴직 후 소득보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65세 노인 인구는 2015년 654만1000명에서 2019년 768만9000명, 2023년 943만6000명으로 늘어났고, 지난해 처음으로 70대 이상 노인 인구가 20대 인구를 앞질렀다. 노인수가 늘어나면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미래 젊은 세대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그만큼 노인 스스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경제 정책이 절실하다.
민간에서의 연금 상품 확대만큼 정부 주도의 연금 개혁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노후소득보장체제를 유지한다면 연금소득이 충분하지 않아서 노인빈곤율이 계속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저소득 고령층의 연금액을 지금보다 2배로 높이면 노인 빈곤률이 11%포인트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선별적인 연금지원을 하거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고, 사회보장기여금의 징수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