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서예림 기자] 2024년 ‘푸른 용의 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유통업계에는 어두운 전망이 가득하다.
결국 유통업계는 지속성장을 위해 지난해 말 파격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오너가(家) 젊은 피를 경영 일선에 배치하고, 이들에게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그룹의 신사업을 발굴하라는 중책을 부여했다. 이는 차기 후계자로서 경영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첫 관문이기도 하다.
성과를 내는 자들은 ‘승계 당위성’을 얻는 반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들은 ‘세습 강화’라는 비판을 맞닥뜨려야 한다.
■ ‘한화그룹 3세’ 김동선 부사장, 한화갤러리아 ‘신사업 발굴’ 시험대
먼저 가장 눈에 띄게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는 인물은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부사장)이다. 김 부사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으로,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부문장과 한화로보틱스 전략담당임원을 겸하며 ‘신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선임되며 건설까지 도맡게 됐다. 이로써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 가운데 ‘유통’과 ‘건설‘ 부문 경영권을 승계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김 부사장은 올해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한화갤러리아의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경영 능력을 검증할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
한화갤러리아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한 12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4%나 줄었다. 백화점 사업이 소비 한파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물가·고금리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주가 전망이 밝지 않다.
특히 김 부사장은 최근 신사업으로 ‘로봇’을 점찍었는데, 로봇과 유통업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로봇 기술을 음식 조리에 활용하는 ‘푸드테크’에도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한화로보틱스가 푸드테크 시장 진출한 것 또한 그 일환으로 해석된다.
최근 김 부사장은 한화갤러리아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3월 한화솔루션에서 분할해 신규 상장했다. 이후 김 부사장은 꾸준히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해 한화솔루션을 제치고 2대 주주로 등극했다. 현재 김 부사장이 보유한 한화갤러리아의 전체 주식 수는 289만3860주로, 지분율은 1.47%다. 올해부터 유통업을 큰 축으로 그룹 내 지배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 ‘롯데그룹 3세’ 신유열 전무, 롯데지주서 ‘성장 엔진 모색’ 주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도 대한민국 재계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신 전무는 지난해 말 단행된 ‘2024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승진하며, 롯데지주 미래성장실과 함께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직하게 됐다. 롯데지주에 새롭게 신설된 ‘미래성장실’은 글로벌 및 신사업을 전담하는 조직이다. 바이오·헬스케어 등 신사업을 관리하고 제2의 성장 엔진을 발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에 따라 신 전무는 올해를 기점으로 신사업 및 성장엔진을 모색해 롯데그룹에 생명을 불어 넣는 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 롯데그룹의 핵심인 유통업까지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신사업 발굴 임무는 유통업에 등판하기 앞서 차기 후계자로서 경영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대라는 분석이다. 실제 신 전무는 지난해부터 VCM(옛 사장단 회의)를 시작으로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베트남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개관식에도 신 회장과 함께 자리했다. 이날 신 회장은 개관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 전무의 유통업 진출과 관련해 “앞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3세 승계 구도를 굳힌 바 있다.
■ ‘BGF그룹 2세’ 홍정국 부사장 vs ‘GS그룹 4세’ 허서홍 부사장 한판승부
이외에도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이자 허태수 GS그룹 회장의 5촌 조카인 허서홍 GS 미래사업팀장 부사장이 GS리테일 경영전략SU(Serivce Unit)장에서 신사업의 지휘봉을 잡는다. GS리테일의 사업 경쟁력 확보와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일 계획이다.
동시에 홍석조 BGF그룹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 BGF 대표이사는 BGF 대표이사 부회장 겸 BGF리테일 부회장 직책을 맡는다. 홍 부회장은 BGF그룹의 신사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유통 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해 편의점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GS리테일과 BGF리테일 오너 일가의 후계자가 경영 전면에 배치되면서 자존심을 건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사업의 향방으로 ‘편의점 업계 1위’ 타이틀이 굳혀질 수 있어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겁다. 현재 매출로 따지면 GS25가 승기를 잡았다. GS리테일의 편의점 부문의 3분기 매출은 2조2209억원으로 BGF리테일(2조2068억원)을 141억원 앞서고 있다. 다만 점포 수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CU가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CU의 점포수는 2022년 말 기준 1만6787개로, GS25(1만6448개)보다 339개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장남인 정해찬 씨는 지난해 8월 삼정KPMG에서 인턴 근무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 통화에서 “지난해를 시작으로 유통업계 내 승계 작업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라며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따라 불확실해진 경영 환경 속에서, 신사업을 발굴하는 성과를 도출하고 승계 당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