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은행 10대 뉴스] 금리로 웃고 울었다···역대급 수익에도 이자잔치‧금융사고 ‘눈총’
유한일 기자 입력 : 2023.12.05 08:23 ㅣ 수정 : 2023.12.05 09:53
올해 중앙은행 고강도 긴축 영향 시장금리 상승세 은행에 최대 이익 안겼지만 이자장사 비판도 지속 금융권 세대교체 본격화··과점 체제 해소 움직임도 고금리 장기화에 은행권 자산 건전성 관리 골머리 되풀이되는 은행 금융사고···부실한 내부통제 도마 당국·정치권 압박에 은행들 긴장··상생금융 만든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억제를 위한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은 올해도 이어졌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은 고객 이자 부담으로 직결됐지만, 반대로 은행권은 역대 최대 이자이익으로 곳간을 채웠다. 이는 은행권에 대한 ‘돈 잔치’ 비판을 촉발했다.
또 올해는 주요 금융사들의 최고경영자(CEO)가 줄줄이 교체되면서 본격적인 세대교체 신호탄을 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고착화된 대형 시중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 해소 차원에서 대항마 육성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재발하는 금융사고로 은행권의 부실한 내부통제도 도마에 올랐다. 금융당국과 정치권도 연일 은행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외적으로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은행권은 상생금융 확대로 여론 진화에 나서고 있다.
다음은 <뉴스투데이>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은행권 10대 뉴스들이다.
■ 중앙은행 고강도 긴축 장기화···금융시장 불확실성 고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했다. 올 1월 연 3.25%에서 3.50%로 인상한 뒤 2·4·5·7·8·10·11월까지 7차례 연속 동결 결정이다.
연초 대비 기준금리 수준이 올라간 건 아니지만 금융시장의 긴장감은 이어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소비자물가 관리 수준인 2%대 복귀 전까지는 고강도 긴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중 이어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매파적(긴축 선호) 발언 역시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채권시장에 반영됐고, 국내 시장금리를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금융시장을 뒤덮은 고금리발(發) 불확실성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종료 시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 직후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 기조를 가져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올해도 역대 최대 순이익 행진···돈 잔치 비판 이어져
시장금리 상승의 최대 수혜자는 은행권이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올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합계는 13조6000억원, 연간 컨센서스(시장 전망치)는 약 16조3000억원 수준이다. 연간으로 보면 역대 최대 기록이었던 전년(15조7309억원)보다도 3% 이상 성장한 규모다.
금융지주 호실적은 이자이익 증대가 주효했다. 올해 4대 금융지주가 걷은 누적 이자이익은 30조2433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총 영업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70~88%에 달한다.
은행권은 연내 이어진 시장금리 상승 영향이라고 설명하지만 ‘이자장사’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을 향해 ‘돈 잔치’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은 매 분기마다 이뤄지는 은행(금융지주) 실적 발표 때마다 재현됐다.
은행들이 준거(기준)금리 상승분에 더해 과도하게 높은 가산금리 적용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게 이자장사 비판의 핵심이다. 시장금리 하락 전환으로 대출금리가 내려가지 않는 이상 은행을 향한 비판적 시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시중은행장·금융지주 회장 물갈이···금융권 세대교체 가속화
은행 내부적으로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주요 금융사 CEO 인사에서 기존 수장들이 잇따라 물러나면서다. 임기 종료 시점이 겹친 영향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금융사 CEO가 연임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온 건 이례적이다.
신한금융의 경우 지주 회장과 신한은행장이 올 1월 동시 교체됐다. 하나은행에도 새 은행장이 올랐다. 농협금융 회장과 농협은행장 역시 바뀌었고, 우리금융도 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이 교체됐다. 지난달 KB금융 회장에도 새 인물로 교체됐다.
금융권 안팎에선 그동안의 다(多)연임 문화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 금융사 CEO들이 경영 성과를 앞세워 ‘셀프 연임’하던 행태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금융당국·여론의 인식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직 내부에선 세대교체 바통을 넘겨받은 CEO들이 디지털 전환과 비(非)금융 사업 등 금융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란 기대도 커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기존 금융사 CEO 인사에서 중요시되던 실적 성장 부분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과점 해소·경쟁 촉진 움직임···신규 플레이어 투입 검토
올해 금융당국의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는 은행권 과점 해소였다. 대형 시중은행에 쏠린 여·수신 수요를 분산해 고객 선택권 다변화 및 금융시장 선진화 유도에 나서겠단 구상이다. 금융당국이 꺼낸 카드는 신규 플레이어 투입을 통한 경쟁 촉진이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과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신규 인터넷전문은행·특화은행 인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은행업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뜻으로, 시장에 ‘메기’를 풀어 긴장감을 높이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대형 시중은행에 대항할 신규 플레이어는 이르면 내년 초쯤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금융권에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일각에선 웬만한 체급을 갖추지 않고서는 대형 시중은행 과점 체제에 균열을 주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존 고객 이탈 및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한 역효과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경기 침체에 지방 금융지주 고전···시장 양극화 심화
지방 금융지주는 금리 상승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았다. 주력 고객인 지역 기업을 중심으로 나타난 업황 악화가 악영향을 끼쳤다. 기업으로 기울어진 사업 포트폴리오가 독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지방 금융지주들의 비은행 자회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도 커지는 형국이다. 지방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증권·캐피탈사들의 부동산 PF 부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지방 금융지주 수익성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올해 시중은행들이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호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동안 지방은행들은 실적 개선세는 주춤한 모습이다. BNK·DGB·JB 등 3대 지방 금융지주의 올 3분기 누적 순이익 합계는 1조609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11% 줄었다.
지역 기업들이 살아나지 않는 이상 시중-지방 금융지주간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사들 입장에선 고객들의 상환 능력 약화가 가시화하면 대손충당금 적립을 늘려 대비해야 하는데, 모두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순이익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다.
■ 연체율 상승 골머리···건전성 관리 시험대 오른 인터넷전문은행
차주 상환 능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인터넷전문은행도 마찬가지다. 설립 취지인 포용금융 이행 차원에서 늘린 중저신용 대출을 중심으로 자산 건전성 악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3분기 기준 연체율은 △케이뱅크 0.90% △카카오뱅크 0.34% △토스뱅크 1.18%로 집계됐다. 총여신에서 부실채권인 고정이하여신(NPL)이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준 △케이뱅크 0.88% △카카오뱅크 0.41% △토스뱅크 1.27%로 나타났다.
인터넷은행은 의무적으로 신용대출 잔액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중저신용 차주에 내줘야 한다. 다만 중저신용 차주는 고상대적으로 신용자 대비 상환력이 약한데,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됐다.
올해 3분기까지 인터넷은행 3사가 새로 적립한 충당금은 618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80.1% 증가했다. 출범 후 한창 성장해야 하는 인터넷은행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인터넷은행들은 신용평가모형(CSS) 고도화 등으로 건전성 관리 노력을 이어가겠단 방침이다.
■ 고객 돈 손대는 은행원들···부실한 내부통제 수면 위로
올해도 은행권에선 각종 금융사고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700억원대 횡령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BNK경남은행에서는 약 1300억원대의 횡령이 터졌다. 이들은 모두 한 부서에서 장기근무하며 자금을 빼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KB국민은행 직원들은 무상증자 업무를 대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미공개 정보를 불법으로 활용해 약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게 금융당국 조사 결과 드러났다. DGB대구은행에선 영업점 직원들이 고객 동의 없이 증권계좌 1662건을 개설한 게 적발됐다.
시장에선 은행권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금융사고 원인으로 부실한 내부통제를 지목한다. 올해 금융사 CEO들은 신년사 등에서 내부통제 강화를 경영 과제로 제시했지만 헛구호에 그쳤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금융사의 내부통제 강화 의무 강화를 골자로 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이 개정안은 책무구조도 체계 구축으로 금융사 임원 한 명당 한 개 이상의 내부통제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 지나친 당국 개입 논란···금리 왜곡 우려 쏟아내는 은행
올해 은행들은 금융당국 수장의 ‘입’에 주목했다. 금융시장 현안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메시지는 사실상 지침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규제 산업인 은행업에서 금융당국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차주들의 이자 부담 완화에 힘 써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면 은행권 대출금리가 소폭이나마 하락했고, 과도한 수신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 이후에는 예·적금 금리가 떨어졌다. 은행들이 가계부채 억제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면 대출 문턱이 높아지곤 했다.
다만 은행권 안팎에선 금융당국의 개입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금리의 경우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인데, 인위적 조정으로 왜곡이 발생하면 시장 질서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금리 조정 여력이나 공적 기능 수행 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때때로 반복적·직접적으로 나오는 발언을 경계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금융시장 선진화를 가로막는 관치(官治)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정치에 흔들리는 은행···국책은행 이전·횡재세 도입 논의 진행형
정치권도 연일 은행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회에선 여야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초과 이익 환수법인 횡재세 도입 등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경우 행정적 절차는 마무리됐으나 ‘본점을 서울에 둔다’는 산업은행법 개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IBK기업은행을 대전으로, 한국수출입은행을 인천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전 대상 은행들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는 반발이 거세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년 4월 총선 전 지역 민심 잡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실제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국책은행 기능 약화 등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고금리에 올라타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둔 은행에 횡재세를 물리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됐다. 은행권에선 해당 법안이 통과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얻으면 ‘상생금융기여금’ 형태로 뱉어내야 하는데, 자칫 주주 환원 축소나 투자 심리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조 단위’ 상생금융으로 민심 달래나···비용 부담은 커질 듯
올해도 금리로 울고 웃은 은행권은 자체적으로 상생금융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금리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하거나 납부 이자를 환급(캐시백)하는 형태가 거론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권을 향해 “금리 부담의 일정 수준을 직접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다. 시장에선 적어도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횡재세 추산 규모인 2조원을 넘어서는 상생금융 프로그램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에선 상생금융 정책이 시행되면 이익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각 금융사 여신 잔액이나 차주 구성 등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비용 부담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