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여론전···‘법 개정’ 첫 단계부터 삐걱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의 서울 여의도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문제에 대해 정치권과 지역사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 공약 이행을 지원하사격하는 여당에선 경제 효과를 앞세워 이전 명분에 힘을 싣고 있지만, 노동조합(노조)의 반발은 여전하다. 노사 대화 부재 속 여론전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관문인 ‘법 개정’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된다.
22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면 오는 2045년까지 비수도권에 125조1000억원이 추가 공급되고, 300조7000억원의 전국적 생산 유발 효과가 전망된다는 산업은행 자체 추정 결과를 공개했다.
김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역균형성장을 위해 2045년까지 비수도권에 시설자금을 연평균 5조4000억원 공급하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내 총생산이 5대5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른 전국적 생산유발효과는 연평균 13조1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경제적 효과를 뒷받침하기 위한 발표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내세웠다. 국책은행 본점을 지방으로 옮겨 지역 경제 활성화 및 기업 자금 공급 효과를 유도하겠단 구상이다.
지역 상공계도 산업은행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와 울산상공회의소, 창원상공회의소는 학계·시민단체 인사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협의회’를 꾸렸다. 부·울·경 협력으로 산업은행 이전에 힘을 싣고, 동남권 경제 활성화도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다만 산업은행 조직 내부의 반발은 여전하다. 노조 측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경제적 효과를 우선 고려한 게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타당성 없이 정책금융기관 본점을 옮길 경우 경제적 파급 효과보다 축소 규모가 더 클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는 김 의원의 발표 직후 성명서에서 “정부·여당과 산업은행 강석훈 회장의 양심팔이는 대체 어디까지인가”라며 “보유 자산이 300조원도 안 되는 산업은행이 단지 20년 만에 300조원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 황당하다. 기본적인 금융 상식도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산업은행 노사가 본점 이전 문제를 놓고 대화 없이 대립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산업은행은 서울 본점에 100여명 수준의 최소 인력만 두고 부산으로 가는 ‘전체 이전’ 방안을 사실상 확정하고 준비 중이다. 다만 지난해 6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취임 이후 부산 이전과 관련된 노사 대화 테이블은 마련되지 않았다.
공회전하고 있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최대 변수는 법 개정이다. 산업은행의 자체적 준비와 행정적 절차를 끝내더라도 관련 법을 바꾸지 않으면 부산 이전이 불가능하다. 현행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는 ‘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로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산업은행법 개정안’ 심사에 나섰지만 여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통과가 불발됐다. 법안심사소위가 법안을 의결하면 정무위 전체회의를 거친 뒤 법제사법위원회 자구심사 이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절차인데, 첫 단계부터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와 총선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산업은행법 개정안’ 같이 여야의 입장차가 첨예한 법안들은 처리를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국회에서 ‘산업은행법 개정안’이 폐기돼 제22대 국회로 넘어가면 산업은행 부산 이전 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강 회장에게 수차례 ‘노사 공동 이전타당성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정말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TF를 즉각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