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뉴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中 '흑연 몽니' 맞서 호주와 동맹 맺는다
남지완 기자 입력 : 2023.11.09 05:00 ㅣ 수정 : 2023.11.09 05:00
LG에너지솔루션, 국내외 업체와 손잡고 실리콘·천연흑연 기술 개발 전념 SK온, 자체연구소 및 그룹 계열사 투트랙으로 실리콘 음극재 연구 박차 삼성SDI, SCN 기술 앞세워 실리콘 음극재 역량 강화에 가속페달
[뉴스투데이=남지완 기자]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중국정부의 흑연 수출 통제와 이에 따른 흑연 공급망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호주기업과 손을 잡는다.
이는 미국이 중국 원재료를 활용한 제품에 대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중국도 자원 수출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빅3'는 중국의 '몽니'에 맞서 호주에서 대체재를 찾았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호주와 협력해 미국 정부의 대중(對中) 압박을 피하고 이를 통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준수와 관련 세액공제제도 등 혜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기업이 올해부터 시행된 IRA를 준수하려면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서 생산한 원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들 배터리 3개 업체는 호주 흑연 기업 시라(Syrah)와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시라는 아프리카 모잠비크 광산에서 흑연을 채굴하고 이를 미국으로 보낸 후 미국 자체 공장에서 정제작업을 할 계획이다. 이후 정제된 흑연은 음극재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고 배터리 3사는 이를 활용해 배터리를 만들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흑연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음극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원재료"라며 "전기차용 배터리 양산 체제를 유지하려면 흑연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음극재는 배터리의 충·방전 속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소재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21년 기준 흑연 82만t을 생산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흑연 가운데 79%를 차지했다. 같은 해 시라 흑연 광산이 있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흑연 채굴량은 12만t(11.5%)인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배터리 업계가 가장 주력하는 시장은 미국"이라며 "호주와의 협업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전기차 시장을 더욱 공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 배터리 '빅3' 호주 흑연업체 ‘시라’와 동맹 체제
국내 배터리업계 큰 형님 격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0월 시라와 천연흑연 공급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MOU를 통해 2025년부터 생산되는 천연흑연 2000t를 공급 받으며 이를 시작으로 협력 규모를 더욱 늘릴 방침이다.
시라는 세계 최대 흑연 매장지역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모잠비크 광산을 소유해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시라는 올해부터 미국 루이지애나(Louisiana)주(州)에 천연흑연 생산공장 착공에 들어가 2025년 천연흑연을 LG에너지솔루션에 공급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시라의 천연흑연 사용을 통해 원재료(흑연)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시라가 확보한 흑연 광산과 미국 생산공장을 통해 생산한 원재료를 배터리 제조에 활용하면 IRA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SK온 역시 지난해 7월 시라와 천연흑연 수급을 위한 MOU를 맺었다. 다만 시라로부터 받을 천연흑연 규모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SK온은 또 지난 5월 미국 흑연 업체 '웨스트워터 리소스(Westwater Resources)'와 배터리 음극재 공동개발협약(JDA) 체결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웨스트워터 리소스가 정제한 천연흑연으로 음극재를 만들고 이를 SK온이 생산하는 배터리에 사용한다는 게 양사의 협약 내용이다.
웨스트워터 리소스는 미국 앨라배마주 쿠사 카운티에 1만7000㎡(약 5100평)에 이르는 흑연 매장 지대의 탐사·채굴권을 갖고 있다. 이 업체는 쿠사 광산 근처에 2억달러(약 2700억원) 이상을 투자해 흑연 정제 공장을 지어 연간 7500t 규모의 흑연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 생산공장은 2024년 상반기부터 본격 가동된다.
이에 질세라 삼성SDI도 호주 기업 시라와 손을 잡았다.
삼성SDI는 올해 8월 시라와 미국 루이지애나주 공장에서 천연흑연 음극재를 공급받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시라 흑연을 활용한 음극재를 자사 배터리에 탑재하는 실증 작업을 2024년 7월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실증이 마무리되면 삼성SDI는 시라와 정식 천연흑연 공급 계획을 체결한다는 방침이다.
■ 배터리 3사, 인조흑연 및 실리콘 음극재 활용해 차별화된 R&D 역량 갖춰
그렇다고 국내 배터리 3개업체가 호주 시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3개 업체는 천연흑연이 아닌 인조흑연 개발과 실리콘 음극재 등 대체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9년부터 국내 코스닥 상장사 대주전자재료와 협력해 음극재 기술 연구개발(R&D)을 추진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과 대주전자재료가 2019년 개발한 기술은 천연흑연을 일부 실리콘으로 대체해 음극재를 제조하는 기술이다.
실리콘은 천연흑연보다 에너지 밀도가 10배 높으며 이를 활용해 음극재를 만들고 배터리를 제조하면 배터리 충전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음극재에 포함된 실리콘 비율은 약 5~10%다. 실리콘 비중을 높일수록 배터리 충전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나 천연흑연 비중이 줄어들면 배터리 안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는 실리콘 음극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6월 호주 배터리 소재·장비 업체 노보닉스(Novonix Limited)와 손잡고 천연흑연을 인조흑연으로 대체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노보닉스는 2012년 설립된 음극재 전문기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노보닉스가 인조흑연 개발에 성공하면 향후 10년간 5만t 이상을 공급 받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은 약 3000만달러(약 400억원)를 투자해 노보닉스 회사 전환사채(CB)를 인수했다. 이 같은 협력을 통해 소재 공급망을 강화하고 미 IRA에도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조흑연은 충전 속도와 출력이 뛰어나지만 흑연을 인공적으로 가공·제조해야 하기 때문에 천연흑연과 비교해 생산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물량도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보닉스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LG에너지솔루션과 원만한 협력관계를 이어 갈 수 있을 지가 향후 관전포인트"라고 강조했다.
SK온은 대전 차세대배터리연구센터를 중심으로 고(高)용량·고효율 실리콘 음극재를 독자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 같은 그룹 계열사 SK머티리얼즈가 미국 배터리 소재기업 ‘그룹14테크놀로지스’와 합작사 ‘SK머티리얼즈그룹14’를 설립해 실리콘 음극재를 개발 중이다.
SK온 관계자는 그룹 내 계열사끼리 R&D 성과 공유 및 협업 등에 언급을 회피했다.
삼성SDI는 흑연에 실리콘을 혼합해 팽창을 최소화하고 음극재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배터리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탄생하는 음극재 소재는 'SCN(실리콘탄소복합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의 '젠5 배터리'에는 실리콘 비율 최대 7%의 음극재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제품은 독일 완성차업체 BMW 등 고급 전기차 브랜드에 탑재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천연흑연, 인조흑연, 실리콘 등을 사용한 음극재 개발, 제조에 배터리 3사 모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천연흑연이 가장 많이 음극재 제작에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다만 고성능 배터리를 제조하려면 인조흑연, 실리콘 활용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에서 유일하게 인조흑연을 활용해 음극재를 생산하는 기업은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올해 하반기 기준으로 천연흑연 연간 7만4000t, 인조흑연 연간 8000t을 활용해 음극재를 생산한다.
음극재 역량 강화가 배터리 업계 화두로 등장한 만큼 포스코퓨처엠은 2030년까지 천연흑연 18만2000t, 인조흑연 15만3000t 수준으로 생산량을 늘려 음극재를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