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기자 입력 : 2023.07.20 07:43 ㅣ 수정 : 2023.07.20 07:43
금융노조 산별교섭서 ‘이사회 참관제’ 도입 요구 이미 금융 공기업 중심 도입···민간에 확대 추진 거수기 비판 이사회 견제 강화·투명성 제고 목적 전문성 부족하고 부담 커···의사결정 지연 우려도 일각선 이사회 직접 진출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등의 노동조합이 속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노동조합 이사회 참관’ 카드를 꺼내들었다. 주요 경영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직접 참여해 감시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거수기 논란에 휩싸인 금융사 이사회의 객관성·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냉각·해빙을 오가는 노사 관계가 이사회 운영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노조는 최근 ‘제5차 산별중앙교섭’ 결렬 이후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사위원회(중노위)에 조정을 신청했다.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중노위가 개입해 중재안을 도출해 달라는 것이다.
산별교섭은 산업 단위 노사가 협상해 임금 및 근로 조건을 결정하면, 동종 산업 전체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금융노조(노)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사)는 2010년부터 산별교섭 방식을 도입해 진행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번 산별교섭에서 임금 3.5% 인상과 주 4.5일제, 점포 폐쇄 대응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으나 사측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임금의 경우 지난해 최초 요구 인상률(6.1%)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제시했다.
눈에 띄는 건 금융노조의 ‘이사회 참관제’ 도입 요구다. 회사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근로자 대표가 배석해 진행 과정을 지켜보겠단 것이다. 이 경우 의결권 행사는 제한되지만 이사회 안건을 살펴볼 수 있고, 필요 시 발언도 가능하다.
한국수출입은행과 주택금융공사 등의 일부 금융 공기업은 ‘노조 이사회 참관제’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금융노조의 요구는 이를 금융지주나 시중은행·지방은행 등 민간 금융사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앞선 사례를 종합했을 때 노조의 이사회 참관 요구는 회사 경영 투명성 제고 목적이 크다. 최근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사 이사회가 경영진 견제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않고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의결권은 없지만 노동자의 경영 참여로 투명성을 높이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금융노조 내 이사회 참관제를 도입한 곳이 있는데, 이를 전체 지부에 확대 도입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사측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전문성 결여와 운영 차질 등이 이유다. 가장 문제는 근로자의 참관 자체만으로도 이사회 부담이 가중되고, 의사결정과 사업 추진 속도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사의 관계자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를 참관하더라도 과연 그 정도의 혜안이 있을지는 의문이고, 이사회에서 논의되는 안건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며 “노조는 경영진이 아니다. 회사 경영에 관심을 쏟다보면 노조의 역할인 직원 복지 등에 대한 신경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금융노조의 노조 이사회 참관 요구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가 이사회에 들어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전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다른 금융지주사의 관계자는 “근로자가 이사회에 들어와 참관하는 것 자체가 간섭이라 느껴질 수 있고, 부담이 커져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려울 수 있다”며 “이미 민간 금융사 노조에서 수년 째 노동이사제 도입을 시도하다 실패했는데, 상급단체(금융노조)가 움직이면 (노동이사제 도입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