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매수'만 내는 리서치 관행…개선 움직임 급물살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증권사의 리서치센터가 발간한 리포트 가운데 ‘매도’ 비중은 1%를 넘는 곳이 없다. 이는 '매수' 일변도의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증권사들은 '매수' 중심에 리포트 발간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말 기준 국내 30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발간한 보고서의 매수의견 비중은 무려 93.7%에 달했다. 중립의견은 6.2%, 매도는 0.1%에 불과했다.
국내 리서치 보고서는 ‘매도’를 찾아볼 수 없단 이유 등으로 신뢰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이용해 주가를 올려 부당하게 매매 이익을 챙긴 증권사 애널리스트(연구원)가 적발되기도 했다.
애널리스트는 기업 탐방 등을 통해 얻은 정보로 증권사 보고서를 작성한 뒤 배포해 시장 참여자가 보게되는 데, 이 보고서를 부당이득 수단으로 썼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겨줬다.
이러한 관행 등은 여러 차례 당국으로부터 지적돼 왔다. 이에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지난달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연 데 이어, 전일에는 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매수 일색 리포트’ 관행 개선을 논의했다.
간담회에서는 △매도 리포트 증가 △독립리서치 제도화 △보고서 유료화 △공시방식 개선 △애널리스트 성과 평가 등의 해결책이 제시됐다.
이 가운데 독립리서치 회사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달리, 리서치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업이다. 국내에는 리서치알음과 밸류파인더, 한국금융분석원, FS리서치 등 10여곳의 독립리서치 회사가 있다.
당국은 현재 독립리서치 회사는 유사투자자문업에 속하지만, 공식 금융투자업자로 분류해 증권사 리서치 리포트 신뢰성과 독립성 제고를 위해 제도 편입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좋은 관행이라면 법제적으로 뒷받침해야겠지만 자본시장 질서와 투자자 보호에 반하는 것이라면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 성과 평가 방식을 개선하는 안도 따져보고 있다. 이는 각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인사 평가 독립성 등을 높인다는 취지다.
애널리스트들은 민원 폭탄이나 불이익 등으로 ‘매도’ 의견을 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움도 따른다. 법인 영업 관계와 부정적 리포트를 받은 기업이 해당 증권사를 기업설명회(IR) 간담회 등에 초청하지 않는 등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다.
개인투자자들의 민원 폭탄도 원인이다. 일례로 지난 4월 에코프로(086520)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낸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빗발치는 민원으로 인해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소명까지 해야 했다.
에코프로의 투자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하고, 목표주가는 지난 4월 11일 종가보다 41% 낮은 45만4000원으로 제시했다는 이유다.
증권사들은 리서치센터에서 분석을 진행하는 기업이 대부분 기업금융 부문의 고객으로 ‘매도’보고서 작성 시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그간 증권사 리포트 투자의견이 ‘매수’로 편향된 것은 일종의 관행으로 통했던 해묵은 숙제인 만큼,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란 쉽지 않다는 시각이 대다수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외국에 비하면 우리가 ‘매도’ 의견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국내 자본시장 구조상 취약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이번 기회에 본질을 확실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리포트 유료화 도입 의견도 나왔다. 일부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에 리서치자료 유료 판매 업무를 신고하고 제한적 공개를 시도하는 등 ‘유료화 실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교보증권은 이달부터 리서치자료의 일부만을 종전과 같이 전체 공개하고, 나머지 부분은 요청시에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다만 본격적 유료화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교보증권 측은 “현재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리서치 자료가 번거롭다는 의견이 많아, 앞으로는 자료가 꼭 필요한 이용자에 한해 요청 시 전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라며 “아직 유료화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KB증권은 2019년 리서치자료 전문 뷰어 플랫폼인 ‘KB리서치’를 신설해 자사 계좌 보유 고객만 리포트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NH투자증권도 일부 리포트에 한해 홈페이지에서만 전체 분량을 볼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리포트 유료화를 활성화까지는 아니지만 증권사마다 지금의 리서치 보고서 제공 범위 등 여러 가지 개선점들은 추후 당국이나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단계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