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의 립서비스와 옐런의 돌직구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정책당국자의 말은 늘 중요하다. 시장참여자들이 향후 정책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금처럼 절대적일 때는 더욱 그렇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모호한 어법을 잘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명확하게 시장에 메시지를 던지기 보다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어법을 선호한다.
22일(현지시간) 연준의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예의 모호한 어법을 구사했다. 향후 금리인상이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이번이 마지막인지를 가늠할 중요한 발언을 기대했지만 파월은 “연준 당국자들이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해 불확실해하고 있다”면서 “일부(some) 금리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may)”고 밝혀 시장에선 이 발언의 의미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금리인하는 우리의 기본전망이 아니다”라고 밝혀 당분간 금리를 인하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할 의사가 없음을 비교적 분명히 했다.
연준이 이번 기준금리 인상을 놓고 고심한 흔적은 역력하다. 파월 의장이 밝혔듯이 연준 인사들 사이에선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꽤 있었다.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뉴욕 시그너처 은행의 파산으로 수많은 중소형 은행들을 둘러싼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잠시 동안 금리를 동결해서 시장 충격을 먼저 수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SVB와 시그너처 은행이 파산한 이면에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이자부담이 증가하고, 장기채권 투자에서는 손실이 발생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3월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지만 결론은 베이비스텝(0.25%P 금리인상)을 단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금융시장 불안보다 인플레이션에 더 방점을 둔 것으로, 물가를 잡는 것이 다른 모든 변수에 우선한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럼에도 연준이 중소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유동성 위기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파월 의장은 “이번 회의에서 굉장히 많은 위원들이 이야기한 부분은 바로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 위축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기존에 인플레이션만 언급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신용시장 위축도 통화정책 결정의 변수로 작용했음을 시사한 것이어서 시장에선 적어도 파월이 시장의 불안감을 달래주기 위해 립서비스를 던진 것으로 좋게 해석하고 있다.
반면 같은 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금융소위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포괄적 보험 도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옐런의 이같은 돌직구는 결과적으로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고 중소형 은행주들의 주가를 크게 흔들었다.
중소형 은행들은 계속되는 예금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시적으로 모든 은행예금에 대해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옐런의 발언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한 셈이다.
옐런은 과거 연준 의장 시절에도 종종 돌직구를 날린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발언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은행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투자자들을 안심시켜 은행권 유동성 위기를 누구보다 빠르게 잠재워야 하는 옐런 장관이 오히려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