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뉴스] KT CEO 잔혹사 '되풀이'…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어쩌나
윤경림 KT 차기 대표, 내정 보름만에 사의 표명
이사회, 윤 후보 설득 중…31일 주총은 예정대로
외풍 앞에 장사없는 KT…정권 바뀔 때 마다 CEO 교체 '홍역'
민영화 이후 연임 임기 채운 CEO는 황창규 전 회장이 유일
[뉴스투데이=이화연 기자]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소유분산기업)’ KT에서 최고경영자(CEO) 잔혹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2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 차기 대표 후보자로 최종 선정된 윤경림(60·사진)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22일 열린 KT 이사회 조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윤 사장이 차기 CEO 후보로 공식 내정된 지 보름만이다.
특히 대표 선임 안 표결이 이뤄지는 정기 주주총회(이달 31일)를 불과 10일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다.
이에 대해 이사회는 윤 후보가 31일 정기 주총까지 버텨야 한다며 설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공식으로 윤 후보에게 사의를 전달받은 일은 없다며 "내부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윤 후보가 사의를 고집할 경우 KT 경영공백은 불가피하다. 후보자 선정 과정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구현모 현 대표 임기가 주주총회를 끝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KT는 CEO가 없는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사태가 빚어지게 된다.
KT는 대표 없이 회사를 운영하거나 대표 대행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 윤 후보, 정치권 외압 의식한 듯…후보 사퇴하면 경영공백 불가피
앞서 KT 이사회는 지난달 10일부터 20일 오후 1시까지 사외 CEO 후보 지원을 받았다. 여기에 사내 후보자군을 더해 총 34명을 상대로 심사를 벌인 끝에 28일 오후 숏리스트(최종 후보자 명단) 4명을 추렸다. 윤 사장이 최종 후보로 낙점된 것은 이달 7일로 보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됐다.
KT는 오는 31일 열리는 주총에서 대표 선임 안건을 상정해 찬반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윤 후보는 22일 KT 이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더 버티면 KT가 망가질 것 같다”며 CEO 후보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전 CEO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여당 눈총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KT가 최종 CEO 후보를 발표한 직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이번 결정이 ‘이권 카르텔’이며 ‘낙하산 인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를 의식한 최대주주 국민연금(10.13%)이 구 대표 때와 마찬가지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KT와 지분을 맞교환해 우군으로 예상됐던 신한은행(5.58%)과 현대자동차(4.69%)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KT에서 10여년간 몸 담은 윤 후보는 구 대표의 디지코(DIGICO·디지털플랫폼기업) 비전을 이어갈 적임자로 평가 받았다. CEO 선임 이슈로 주가가 횡보하자 뿔난 개인투자자들이 윤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윤 후보가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와 과거 관행에 따른 문제들은 과감하게 혁신하고 정부정책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강조하고 ‘지배구조개선TF’(가칭)를 즉시 신설한 점도 좋은 점수를 얻었다.
이에 따라 최근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윤 후보 찬성안을 권고했다. 국내 자문사 한국ESG평가원과 한국ESG연구소도 찬성 의견을 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세계 각국 기관 투자자 등에게 의결권 행사 자문을 제공해 KT 지분 약 44%를 차지하는 외국인 주주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KT 이사회는 윤 후보를 설득하고 있으며 가닥이 잡히면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 정권 바뀔 때마다 CEO 교체…KT “자세한 내용 확인 중”
공기업에서 민영화돼 주인이 없는 소유분산기업 KT는 지난 20여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교체되는 흑역사를 반복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이용경, 남중수, 이석채, 황창규, 구현모 등 5명이 대표직에 올랐지만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모두 채운 인물은 황창규 전(前) 회장 뿐이다.
민영화 KT의 초대 대표 이용경 전 사장은 당초 연임 의사를 밝혔지만 후보 공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 뒤를 이어 2005년 취임한 남중수 전 사장은 3년 임기를 채우고 2008년 2월 연임에 성공했다. 남 사장은 같은 해 11월 납품 비리 혐의로 구속돼 연임 임기를 완주하지 못했다. 2008년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해다.
이에 따라 2009년 1월 이명박계 인사로 분류되는 이석채 전 회장이 취임했다. 이 전 회장은 2012년 3월 연임에 성공했지만 같은 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흔들렸다. 결국 이 전 회장은 이듬해 11월 배임 혐의로 검찰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퇴진했다.
이 때문에 구현모 대표가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임기를 완주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 중론이었다. 윤 후보 사퇴가 예정됐던 수순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편 윤 후보가 사의를 공식으로 발표하더라도 주총은 예정대로 열린다.
다만 대표이사 선임 건은 주총 의안에서 제외된다. 의안에서 제외될 경우 KT는 해당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KT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후보자 사임 관련 내용은 아직 확인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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