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이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은행권 대출금리가 하락하고 있다. 은행들이 금융 소비자 이자 부담 완화 차원에서 잇따라 대출금리 인하에 나선 결과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대출금리와 함께 정기예금 금리도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상품 금리는 사실상 3%대로 주저앉았다. 은행권은 정기예금이 대출금리에 영향을 주는 구조인 만큼 쉽게 금리를 조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26일부터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1.30%포인트(p) 내린다. 차주 이자 부담 완화와 사회적 책임 이행이 대출금리 인하의 이유다.
앞서 우리은행도 우대금리 및 본부조정금리 확대로 대출금리 인하 효과를 냈다. 결과적으로 우리은행 아파트담보대출(아담대) 금리는 0.9%p,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대 1.55%p 각각 낮아졌다.
NH농협은행 역시 지난 20일부터 변동형 주담대 금리를 기존 대비 0.8%p 내렸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17일부터 신용대출과 고정형 아담대 금리를 각각 0.7%p, 0.34%p 인하했다.
새해부터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를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지난 10일 5대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8.11%를 기록했다. 주담대 최고 금리가 연 8%를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지난해 누적된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시장금리가 상승한 결과다. 여기에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50%로 0.25%p 추가 인상했다. 지난해 1월(연 1.25%)과 비교하면 2.25%p 상승한 수치다.
다만 이번 기준금리 인상 이후 은행권은 대출금리 인하 방침을 속속 발표했다. 그간 시장금리 상승 흐름에 동행해 대출금리를 올린 것과 대조된다. 이날 기준 시중은행 주담대 상단은 연 6%대 초반을 형성 중이다.
은행들이 태도를 바꾼 건 금융당국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고금리 상황에 차주들의 이자 부담은 늘고 있는데, 이자 이익으로 실적 파티를 벌이고 있는 은행권에 대해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모니터링 강화에 나섰다.
은행들이 시장금리 상승 외 대출금리를 올릴 만한 유인이 있는지 더 면밀히 살피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이를 사실상 대출금리 인하 압박으로 받아들인 은행들이 발 빠르게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금리 인하는 차주들의 이자 부담 완화와 부실화 방지 목적이다. 추가 인하가 가능할지 계속 검토 중”이라면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은행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분위기라 동참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출금리가 하락 전환한 건 긍정적이지만,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도 떨어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은 이달 기준금리 인상분을 예·적금 등 수신금리 반영하지 않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주력 정기예금 상품 금리(1년 만기)는 연 3.68~4.00%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5% 돌파 후 연 6%를 넘보고 있었지만, 거의 2개월 만에 3%대로 주저앉았다.
은행권은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게 대출금리 안정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기준금리와 연동해 정기예금 금리를 인상할 경우 대출금리가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 역시 은행권에 정기예금 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린 상태다.
실제 가계대출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변동형 주담대의 경우 코픽스(COFIX)를 준거금리로 삼는다. 코픽스는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의 금리가 상승 또는 하락할 때 이를 반영해 움직인다.
결국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정기예금 금리 인상→코픽스 상승→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정기예금 금리 하락으로 고객이 받는 이자가 줄어들겠지만, 대출금리 억제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은행권이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지 않고 오히려 떨어진 결과 지난해 12월 기준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전월 대비 0.05%p 하락했다. 은행들은 코픽스 하락분을 곧바로 변동형 주담대 금리에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