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액보험 보증준비금'에 뒤바뀐 생보업계 서열…IFRS17 도입에 '부익부빈익빈' 심화 예상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국내 생명보험사의 실적 순위에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빅3 생보사의 순위가 달라진 가운데 중형 생보사가 약진하면서 판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7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23개 생보사가 지난해 1~3분기 거둔 당기순이익은 총 2조9437억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20.3% 감소한 수치다. 반면 국내 31개 손보사가 같은 기간 거둔 당기순이익은 4조81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85억원(22.3%) 증가했다.
생보업계는 과거 종신‧연금‧변액보험 등을 주력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저출생과 고령화로 국내 시장이 과포화됐고, 가족구조가 변화하면서 종신보험에 대한 인기가 줄면서 최근 손해보험업계에 주도권을 내주게 됐다.
보험료 수익이 위축된데다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융자산 처분 손익까지 줄어 투자 영업이익도 감소했다. 또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해지 환급금이 급증한 점도 생보업계의 부진 이유로 지목된다.
생보업계 맏형인 삼성생명은 지난해 1~3분기 당기순이익 21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7% 급감해 6위를 기록했다. 생보업계 2위사인 한화생명 역시 전년 동기 대비 44.9% 감소한 195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7위로 밀려났다.
삼성생명, 한화생명과 함께 생보사 '빅3'로 불리는 교보생명 역시 당기순이익이 27.8% 감소하며 3947억원을 나타냈으나 상대적으로 감소폭을 최소화하면서 순이익 규모로는 생보업계 1위를 차지했다. 금리 상승 여파와 보험금 지급 확대 등이 순이익에 악영향을 미쳤으나 선방했다는 평이 나온다.
중형 생보사인 신한라이프는 당기순이익이 87.7% 증가한 3679억원으로 집계되면서 교보생명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해 7월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가 통합하면서 출범한 신한라이프는 통합 시너지를 이뤄낸 것으로 평가된다.
외국계 생보사들도 약진했다. AIA생명은 당기순이익 2747억원을 기록하며 60.6% 증가했고, 라이나생명은 2685억원으로 13.7% 증가해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NH농협생명은 당기순이익 2440억원으로 113.6% 증가하며 5위에 올랐고 푸본현대생명 1668억원, 흥국생명 1590억원을 기록하며 상위 10개사에 포함됐다.
이 같은 순위 변동 배경으로는 증시 하락에 따른 변액보험 보증준비금 부담 확대가 지목된다. 변액보험에는 최저사망보험금보증, 최저연금적립금보증 등 가입자의 손실을 제한하는 보증옵션이 부가돼 있어 주가 지수가 하락하면 더 많은 보증준비금을 확보해야 하고, 적립금이 증가하는 만큼 순이익은 감소하게 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3분기까지의 당기순이익은 증시 하락에 따른 변액보험 보증준비금 적립 확대 영향이 컸다"면서 "대형사일수록 보증준비금 부담이 커 순위 변동이 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형 생보사들은 업권을 둘러싼 환경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ABL생명은 당기순손실 602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은 당기순손실 99억원, BNP파리바카디프생명은 당기순손실 85억원으로 적자가 이어졌다.
푸르덴셜생명의 경우 182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으나 KB생명이 47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양사의 통합법인인 KB라이프생명은 올해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대형사와 소형사의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올해 본격 시행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으로 재무적 압박이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IFRS17은 보험사의 부채 평가 기준을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 보험사의 보험금 부채는 증가하게 된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이미 준비를 마친 보험사의 경우 IFRS17도입은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라며 "보장성보험 비중을 늘리는 등 대비한 보험사는 계약서비스마진(CSM) 규모가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SM은 보험계약에서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미실현이익으로,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IFRS17에서는 저축성보험을 부채로 산정하고, 보장성보험은 CSM으로 계산한다. CSM 규모가 클수록 보험사의 보험영업이익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에 생보업계에서는 보장성보험을 확대하며 IFRS17 도입에 대비해 왔다.
이 관계자는 "자본이 부족하거나 여건상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소형사의 경우 IFRS17 도입에 따른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대형사와 소형사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