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 환경 악화에 은행서 돈 빌리는 보험사…단기차입 한도 대폭 확대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경기침체와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보험사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단기차입 한도를 대폭 늘리고 있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신한라이프는 이달 5일 이사회를 열고 단기차입 한도를 1300억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확대하는 안을 의결했다. 1조4000억원은 산한라이프 자산총액의 11.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단기차입은 통상 만기 1년 내로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한도를 늘린다고 해서 당장 돈을 빌린다는 의미는 아니며, 위기상황에 대비해 마이너스통장을 만드는 개념이다.
신한라이프는 향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은행에서 당좌차월을 받거나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를 통해 1조4000억원 한도 내에서 단기차입을 실행할 방침이다.
RP 매도 잔액을 제외한 1조2700억원의 단기차입 한도는 신한라이프 자기자본의 24.6%에 해당한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도 지난달 말 단기차입 한도를 기존 2000억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늘린 바 있다. 푸본현대생명은 역시 한도를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확대하면서 자기자본 1조2824억원을 웃도는 수준까지 올렸다. 다른 보험사들도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 수준까지 단기차입 한도 확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단기차입 한도를 확대하는 배경에는 레고랜드 사태로 최근 자금시장이 경색된 점과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향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저축성보험 해지 증가와 연말 퇴직연금 만기로 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 등 유동성 리스크가 예상되는 점도 단기차입 확대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기준금리가 급격히 인상되면서 예적금 금리가 계속해서 오르자 만기가 짧은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비과세가 적용되는 저축성보험은 10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축성보험보다 예적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저축성보험의 금리를 올리면 자금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금융감독원이 생보업계에 저축보험 금리 경쟁을 자제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다만 퇴직연금과 관련해 정부는 보험사가 자금이탈에 대비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차입한도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RP 매도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업계에 자체적으로 유동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도록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장 자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라면서 "직장인들이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늘릴 수 있을 때 늘려두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