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상환수수료 면제하라” 압박 나선 국회···은행권, 응할까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차주가 대출 잔액을 계약 기간보다 빨리 갚을 때 내는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급상승한 대출금리에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청년층 부채 규모도 갈수록 늘어나기 있기 때문이다.
당·정이 이 사안에 대해 머리를 맞댈 예정인 만큼 은행권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도출 결과에 따라 여신(대출) 체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수신금리 하락, 대출금리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등 고금리 부담 완화 대책을 오는 6일 논의할 예정이다. 올해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에 늘어난 가계 이자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사안은 정치권에서 먼저 나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전세대출, 신용대출의 금리가 연 8%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은행권도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안심전환대출처럼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의장은 “고금리로 은행들은 유례없는 흑자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한다. 은행권이 답할 차례”라고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를 거듭 압박했다.
최근 대출금리가 치솟으면서 낮은 금리로 갈아타려는 대환대출 수요는 늘고 있지만, 실제 지불해야 하는 중도상환수수료가 너무 많아 실행되지 못 한다는 게 정치권의 지적이다. 청년층의 부채 규모가 폭증한 점도 이유로 거론했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말 그대로 대출을 중도에 갚을 때 은행에 내는 돈이다. 은행 입장에선 차주가 대출을 조기에 상환할 경우 자금 운용에 공백이 생긴다. 이 때문에 발생할 기회비용을 차주가 부담하게 하는 일종의 페널티다.
현재 은행권 중도상환수수료율은 최대 1.4% 수준이다. 대출 기간이 길어질수록 중도상환 수수료는 줄어든다. 보통 3년이 지나면 면제된다. 1년 신용대출로 5000만원을 빌린 차주가 6개월 만에 상환할 경우 수수료율 1.2%로 계산하면 약 30만원을 더 내야한다.
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 때도 거론된 바 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올 7월까지 은행권이 받은 중도상환수수료는 약 1조9761억원에 달한다.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대비 압도적으로 많다.
당·정 협의가 본격화하는 만큼 은행권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적어도 내년 초까지 이어질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 불확실성 등은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요구 명분에 힘을 싣고 있다. 역대급 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은행권의 고통 분담 요구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은행권은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일단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로 수수료이익 등 실적 감소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문제는 여·수신 운용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대출 계약 기간이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 실행 시 발생하는 일종의 고정비용이 반영된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경우 근저당권 설정 절차가, 신용대출의 경우 인건비·전산비가 소요된다.
은행은 총 대출 기간에 금리(이자)룰 적용해 이익 구조를 계산하는데, 고객이 너무 빨리 대출 상환에 나서면 비용보다 낮은 이자가 나와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여윳돈이 생겨 대출을 갚겠다고 하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중도 상환은) 고객이 계약을 파기한 것”이라며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경우 기간과 한도, 금리를 정할 때는 법무사 등 여러 작업이 있다. 결국 이때 발생하는 ‘비용’을 은행에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출 기간 동안 납부하는 이자를 고려해 자금을 운용하는데 이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대출을 갚아버리면 결국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며 “이자 이익보다는 비(非)이자 이익을 늘리라고 하더니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하라는 건 맞지 않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은행들이 중도상환수수료 면제에 나서면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리스크 비용인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만큼, 신규 대출 실행 시 금리에 선(先)반영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와 수신금리의 균형도 고려를 해야 하는데, 대출 상환 시점에 대한 예측이 불안정해지면 이익 구조상 수신이든, 여신이든 금리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1, 2bp(1bp=0.01%포인트)라도 금리가 등락하는 순간 고객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