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원인과 경과
[뉴스투데이=송재익 국가전략연구소 전문요원]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을 네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돈바스 지역에서의 충돌이다. 2014년 크름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자 미국 및 서방세계는 대러 경제제재를 8년째 하고 있다. 돈바스 친러 주민들은 2014년 크름반도가 러시아로 편입하는 것을 보면서 크름공화국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하였다. 루한스크 자치공화국과 도네츠크 자치공화국은 크름공화국을 따라 독립선언을 한 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무력투쟁을 지속하다가 휴전협정을 맺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강경진압에 따라 무력투쟁은 지속되었다.
유럽연합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민스크 협정’을 체결하여 정전 상태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우크라이나측은 적극적으로 준수하지 않아 친러 주민들이 많이 희생되었는데 러시아 측은 이를 ‘신나치주의자들의 인종학살’로 규정하면서 비판하였다. 따라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특수 군사작전을 수행하며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목표를 발표하고 군사작전을 시작하였다.
둘째, NATO의 동진과 러시아의 위협인식이다. 소련 붕괴 후 NATO는 동유럽으로 가입 국가들을 확장하여 갔다. 1999년 NATO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가입시켰으며, 2004년에는 발트 3국,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 7개국이 추가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독립국가연합(CIS) 중에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타에 ‘색깔 혁명’이 일어났는데 러시아는 미국 및 NATO의 공작으로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봤다. 따라서 러시아는 CIS 국가에서 반러시아 동향이 발생하는 것은 러시아의 CIS 통합 노력에 절대적 위해 요소로 인식하였다.
셋째,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추진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이후 친러정권과 친서방정권이 교대로 들어서게 되는데, 친러 정권이 들어서면 유럽연합 및 NATO 가입을 추진하였다. 특히 제렌스키 대통령이 2019년 5월20일 취임하고 NATO 가입을 재추진하자 러시아는 이것을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레드 라인을 정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전쟁의 중요한 핵심요소로 작용하였다.
넷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자신감이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1999년 체첸전쟁,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름반도 합병을 성사시키면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돈바스 지역으로 한정할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그 예상을 깨고 전면적으로 침공을 개시하게 된 것은 계속된 성공에 취해 판단을 잘못하고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복속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6개월째 들어 장기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 경과 : 1단계 작전(2.24 ~ 3.25)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벨라루스 지역에서 2월10일부터 20일까지 연합훈련인 ‘동맹 결단-2022’를 실시하고 훈련했던 부대들은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벨라루스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전면전 공격을 앞두고 부대전개와 기만의 효과를 보기 위한 연합훈련이었다.
4일 후 푸틴 대통령은 의회의 군사작전 승인 후 대국민 연설을 통해 ‘특수 군사작전’을 수행하기로 밝히며 04:50경 군사작전을 감행하였다. 예상했던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격작전이 아닌 우크라이나 영토의 북부, 동부, 남부에 전력을 투입하며 공격을 개시하였다.
러시아군의 명시된 작전목표는 돈바스의 해방이었다. 이를 위해 정밀무기로 우크라이나 군사시설, 무기 및 장비, 탄약 및 물자 기지를 선택적으로 파괴했으며, 우선적으로 민간인 피해 방지였다. 러시아는 돈바스 주민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위해 공격지역을 검토한 결과 돈바스 지역만 공격할 경우 다른 지역의 지원 병력이 지속해서 돈바스 지역으로 유입될 것을 고려하여 전 지역의 비군사화를 계획하여 실행에 옮겼다.
기동부대 운용은 초기의 계획대로 북부 지역에 동부군관구와 중부군관구가 고착견제하고, 북동쪽에서는 서부군관구의 일부 부대를 투입시켰다.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는 각각 지역 인민경찰대가 군단급 편성으로 공격을 시도하였고 러시아군이 지원하는 운용개념이었다. 그리고 크름반도 북쪽의 헤르손과 니콜라예프, 남동부 해안의 마리우폴은 러시아 남부군관구 예하 부대가 공격작전을 실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브리핑에서 1단계 작전의 기본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평가했다. 1개월간의 군사작전 결과는 작전목표별로 다음과 같다.
첫째, 돈바스 지역 해방 목표는 이전의 37%에서 74%로 점령지역을 확대했다. 러시아는 1단계 작전을 통해 대부분의 돈바스 지역을 장악하고 남부의 크름반도와 돈바스를 연결하는 육상 벨트를 점유하며 흑해 및 아조프해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우크라이나 비군사화를 위해 러시아는 3월 28일 기준 미사일 1,300여발(킨잘, 칼리브르, 이스칸데르, 오닉스 등)을 발사하여 우크라이나의 주요 시설을 타격했으며, 공군기지 16개소, 무기고 39개소를 파괴하여 무기 및 탄약, 유류 등 전쟁물자 보유량의 70%를 무력화했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해군은 무력화 됐고, 공군도 임무수행 불가 상태에 있다고 하였다. 우크라이나의 보급기지, 무기고, 공군기지, 방위산업시설, 정비공장 등이 거의 무력화되었다고 하였다.
셋째, 탈나치화는 극우 나치주의자인 아조우부대 등을 포함한 5만 9,300여 명 중에서 사망 7,000명을 포함하여 1만 6,000명을 격멸했다고 발표했다. 1단계 작전간 러시아군 피해는 사망 1,351명, 부상자 3,825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발표는 러시아군의 피해가 2만 명으로 미 정부기관은 약 1만 명으로 평가하였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대국 피해 현황 발표는 진행 중인 전쟁으로 사기를 고려하여 과장되어 발표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전쟁 경과 : 2단계 작전(4.19 ~ 7월)
러시아는 1단계 작전을 종료하고 약 20일 간에 걸쳐 부대 재배치와 정비 활동을 하며 별다른 공세 행동을 하지 않다가 4월 19일부터 공세를 재개하였다. 키이우 방향에 투입했던 부대들을 재배치하여 하르키우 방향으로 공세를 재개했다. 그리고 2단계 작전에서는 돈바스 지역에 집중 공격을 하였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군(아조우부대 등)이 약 8년 간 요새화하여 벙커 및 지하시설이 발달하여 공격이 어려운 지역이다. 러시아는 2단계 작전에서 전술을 수정했다. 전술을 수정한 이유는 첫째는 민간인 요소이다.
러시아는 전반적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작전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부분 국민이 항전 의식으로 뭉쳐 러시아군에게 항거했다. 게다가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 아조우연대는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사용함으로써 작전에 차질을 빚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력하여 인도적 통로를 통해 주민들을 호송시키고 나서 그 이후에 작전을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통로 설치와 관련한 합의가 미흡하고 준수하지 않아 원활한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2단계 작전부터는 작전지역 내의 민간인을 먼저 호송시키는 동시에 점령지역의 주민에 대해서도 회유와 민사작전을 강화하여 시행하였다.
둘째는 특수 군사작전 수행으로 러시아의 정규 군사작전 교리에 의한 군사력 운용을 하지 못해 제병종 합동작전을 시행하지 않아 작전에 차질을 빚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2단계 작전에서는 피해를 방지하고 우크라이나 유생역량을 말살하기 위해 소모전 전략에 의거 군사력 운용은 항공기 및 포병으로 적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후에 기동부대가 전진하는 군사작전으로 시행하였다. 이러한 작전개념에 따라 러시아군은 작전 템포는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점령지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2단계 작전 결과 마리우폴, 세베로도네츠크, 리시찬스크에 대한 완전 해방을 할 수 있었고, 이 세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아조우부대가 공장지대에서 저항을 강력히 하여 점령하는데 2-3개월이 소비되었다. 특히 러시아는 점령지역에 대한 민사작전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점령지역에 임시 난민수용소를 운용하여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였으며, 헤르손 지역에서는 희망자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하여 러시아로 이동을 제공하고 러시아 내에 난민 수용소를 9,500개를 운용하여 난민들에게 숙소 및 일자리 제공, 어린이 취학 등을 제공하여 주민들의 민심을 사는 노력을 병행하였다.
2단계 작전 기간인 6월 초순에 우크라이나군은 무기와 장비, 물자가 모두 소진되거나 파괴되어 전적으로 외국의 무기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7월 말까지 러시아군은 소모전 전략으로 포위전술을 구사하며 자국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화력전으로 우세를 달성하였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대량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무기, 탄약 및 유류 등 물자부족으로 효과적인 방어에 제한이 되는 상황이었다.
8월 이후 전쟁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공격이 공중폭격과 미사일 공격의 위주로 군사작전이 진행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을 하며 러시아군의 점령지를 탈환하고 일부 러시아 점령지에 대해서는 장거리 정밀사격으로 타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8월 이후는 장거리 정밀 타격전 양상을 보이면서 게릴라전을 병행하며 우크라이나가 일부 지역에서는 우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외국과의 화상 인터뷰 및 외교전을 펼치며 전투무기, 장비 및 물자를 지원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며 장차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및 서방국가들로부터 무기 지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 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예비역 대령, 육사35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