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 보령과 세리(稅吏) 유착 수사한다고?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국세청 고위공무원과 제약사의 유착은 영화에서 볼법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도 그렇다. 지난달 초 경찰이 전직 종로구세무서 서장 2명이 보령(구 보령제약)을 비롯한 타 제약사들과 유착 관계가 있다고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
종로구는 보령을 중심으로 다국적 제약사 한국 지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종로구세무서 압수수색으로 당시 제약 업계는 뒤숭숭 그 자체였다.
문제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가 이 사건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는 경찰 최고의 수사 전문 기구다. 예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의 역할을 경찰 내에서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대검 중수부가 어떤 곳인가? 성역 없는 끝장 수사, 고위 공무원 부정부패 척결 등 검찰 조직의 꽃으로 불리던 곳이다. 일개 제약사와 지역 세무서장과 유착 관계를 수사하겠다고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가 나섰다는 것은 웃기는 노릇이다. 마치 국내 초등학교 1위 축구팀을 이겨보겠다고 FC 바르셀로나를 데려온 꼴이다.
지금이 어느 시국인가? 누구보다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반대했던 윤석열(당시 서울지방검찰청장·검찰총장) 대통령이 버티고 있고, 비대해진 경찰 조직을 누르겠다고 ‘경찰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경찰 내 반발이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수사권 조정 당시 검찰이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넘겨주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것은 경제범죄와 지능형 사건 수사에 취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 내 경제사범과 지능형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인력이 없기 때문에 엘리트 집단인 검찰의 지배 하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경찰은 경찰대 출신 인재가 많아졌고 조직도 과거에 비해 스마트해져 경제사범 및 지능형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논쟁 속에서 경찰 조직을 축소하려는 정부 여당 내 움직임이 강한 현 상황에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가 보령 및 여러 제약사들과 전직 지역세무서장 유착 관계를 수사한다는 것은 시의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매출 6000억원을 겨우 넘기는 보령을 수사해서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는 뭘 얻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보령과 전직 지역세무서장 주변에 거대한 정치 비호세력이 있어서 이것을 수사하는 것일까?
3일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세정협의회라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느껴 수사에 착수했다”면서 “보령에 한정해 수사하기보다는 전직 지역 세무서장들이 세무사 사무실을 열 때 현역 시절 담당했던 기업과 밀접해 일을 수주하는 양상이 있어서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힘 빠지는 답변이다. 대한민국 경찰청 최고 수사기구가 지역 세무사 사무실 업무 수주 과정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는 얘기다. 이어 수사과장은 “현재 수사 중인 상황이라 진행 상황을 말할 수 없다”면서 “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현재로서는 밝힐 수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중대범죄수사과는 전 종로세무서장 2명 등이 보령 등 업체를 도와주려는 대가로 금품을 제공 받으려 한 것을 의심하고 있다. 또 중대범죄수사과는 전 종로세무서장 2명이 현직일 때 고문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과장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이 세무사 사무소를 차리고 수주하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수사하면서 대대적으로는 전직 지역 세무서장과 보령 등 제약사들의 유착을 밝혀낼 것이라고 알린 셈이다.
보령 관계자는 “국수본 수사가 드러나면서 주가도 떨어지고 해외 파트너사들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며 “무엇보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져 피해가 이만저만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