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고작 13억원 제네릭 시장 ‘특허 도전’ 나선 제약사 속내...특허정책 안바꾸면 대형로펌만 돈 벌어
특허청이 다국적 제약사의 '에버그리닝' 깐깐한 심사 본다면, 국내 제약산업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국내 제약 산업은 신약 개발이 아닌 제네릭 생산 판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같은 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보건당국의 제도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특허청의 정책 기조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전략 의약품을 국내에 출시할 때 에버그리닝 전략을 쓸 수 있게 특허 출원을 해주고 있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략 의약품 특허 만료 2~3년 남겨두고 ‘용도특허’ 일부를 수정해 다시 출원을 신청하는 게 에버그리닝이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특허 방어 전략이다.
미국과 러시아, 인도 특허 당국의 정책 기조는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해 관대하고 제네릭에는 박하다는 것이다. 환자가 제네릭을 복용했을 경우 만에 하나 발생할 부작용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오리지널 의약품 우선주의 정책을 쓰는 것이다. 다만 환자들이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만 복용해야 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 제약 시장을 보자. 다국적 제약사의 전략 의약품 특허 만료 기간이 2~3년 남게 되면 수십 개의 제네릭 제조사들이 특허에 도전한다. 승소 시 오리지널 의약품을 몰아내고 자사의 제네릭이 유통될 수 있도록 치열한 영업 경쟁을 펼친다.
제약사의 리베이트가 허용됐을 때는 자사의 제네릭을 사용해 달라고 의사들에게 갖은 접대와 로비로 문제가 발생했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제네릭 산업을 이정도 키워 놓은 게 리베이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허 심판으로 다국적 제약사 전략 의약품이 특허가 풀리게 되면 국내 수십 개 제약사들이 앞다투어 제네릭을 출시해 과도한 영업전을 펼친다. 이를 막기 위해 5년 전 도입된 게 ‘우판권’제도다.
정해진 기간 내에 특허 심판에 참여하면 승소 시 9개월의 우선 제조 판매권이 주어진다. 먼저 참여한 제약사들에게 특혜를 줘 제네릭 과당 경쟁을 막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다. 그러나 9개월 후 다수의 제약사들이 제네릭을 개발 생산하기 때문에 과당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다만 늦추는 것 뿐이다.
최근 명인제약과 유니메드제약이 다국적 제약사 룬드벡과 다케다가 공동 개발한 다중작용기전 항우울제 ‘브린텔릭스’에 대해 특허 도전을 선언했다. 현재 제네릭 생산도 완료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이 약은 연간 90억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제네릭 ‘보티옥센정’이 출시될 경우 브린텔릭스 갖고 있는 시장 30% 정도는 빼앗아 올 것으로 유니메이드제약은 내다보고 있다. 보티옥센정은 명인제약이 제조하고 유니메드제약과 공동 유통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산술적으로는 명인제약과 유이메드제약이 27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이지만, 보건당국의 규정상 제네릭의 약값은 약 50% 선에서 낮춰진다. 사실상 1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역시도 명인제약과 유니메드제약이 나눠 갖기 때문에 각각 6억7500만원의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산술적 시장 규모가 13억5000만원인지 몰라도 오리지널 의약품의 제네릭이 출시되기 시작하면 그 약이 가진 경제성은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보티옥센정이 제악사 하나당 가져다주는 수익은 6억7500만원이다. 그러나 특허 도전 관련 법무 비용을 감안하면 이보다 매우 적을 것으로 추산된다.
법무 비용에 대해 유미메드제약 관계자는 함구하고 있지만 “상당한 수준”이라고 했다. 특허 관련 소송은 특허심판원에서 최초 변리사에 의해서 진행된다. 특허 도전 무효 시 이에 불복하면 특허법원에 항소하면 된다. 여기서도 패소할 경우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으면 된다.
국내 최대 로펌 중 하나인 ‘태평양’에는 다수의 약대 출신 변호사와 변리사가 포진해 있다. 특허 관련 소송 1심에 해당하는 특허 심판을 진행할 수 있는 변리사와 2~3심까지 진행할 수 있는 전문 변호사까지 다 갖췄다. 이 같은 시스템은 국내 최대 로펌 상당수가 갖추고 있다. 이는 특허 도전 관련해 로펌이 시장성(수임료 수익)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방증인 셈이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의 수익구조를 보면 매출은 증가했지만 판관비 및 영업 지원비의 증가로 당기순이익이 위축돼 있다. 1000억원 매출을 올려도 판관비 및 영업 지원비가 700억원을 넘어서는 구조라 남는 게 없다.
13억5000만원 시장을 선점하고자 특허 도전을 할 경우 현 제약사의 수익구조로 볼 때 법무 비용은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 않는 특허 도전에 국내 제약사가 뛰어드는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혹시 모르니까”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약 하나 갖고 있으면 일정 부분 수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소송 비용을 커버해 나갈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또 우판권 확보로 안정적이게 시장 진입한 후 다수의 제약사들이 제네릭 생산을 안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만일 특허청이 에버그리닝을 못하게 깐깐하게 특허출원 심사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해 특허 도전을 할 수 없는 정책 기조를 가져갈 경우는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불필요한 특허 소송이 줄어들 게 돼 제약사의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고 다수의 제네릭이 출시돼 영업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한다면 시장이 보다 안정적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