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호위함인 ‘울산급 배치-Ⅲ’ 후속함 건조사업 ‘제안서 평가 방식’ 적용해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선도함은 건조능력 보는 제안서 평가하나 후속함은 가격 위주 적격심사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울산급 배치-Ⅲ 3·4번함 건조사업이 8월 중 입찰 공고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동안 함정사업을 선도해온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HJ중공업(구 한진중공업) 등 기존의 대형 조선소들이 사업 참여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진 상태다. 왜냐하면 지난해 12월 2번함 건조사업의 입찰 결과가 최저가를 제시한 ‘삼강엠앤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삼강엠앤티는 지난 2019년 STX조선해양 방산 부문의 영업권을 인수해 방산업체 자격을 취득한 신흥업체다. STX조선해양은 울산급 배치-Ⅰ 4·5·6번함을 손해 보면서 수주하는 무리수를 감행했던 회사다. 이렇게 저가 수주를 주도해온 회사의 DNA를 계승한 삼강엠앤티는 2020년부터 해양경찰 함정사업에 적극 참여해 10척의 경비함을 수주했다.
울산함 배치-Ⅲ 2번함 건조사업 입찰에서도 삼강엠앤티는 정부가 추산한 적정가격인 약 3900억원의 86%인 3353억원을 제시해 대우조선해양(3501억원)과 한진중공업(3515억원)을 제치고 수주했다. 이후 기존의 대형 조선소들은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에 함정건조 능력보다 가격 위주로 경쟁하는 구조인 현행 적격심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제도 개선을 제기하고 나섰다.
현재 기본설계부터 선도함까지는 업체의 함정건조 능력 위주로 ‘제안서 평가’를 하지만 후속함부터는 가격 위주로 평가하는 ‘적격심사’를 하고 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삼강엠앤티는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 보유를 극히 제한하고 함정 건조에 필수적인 직무에만 직영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대형 조선소보다 임금 수준도 낮고 생산인력은 대부분 외주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 대형 조선소 건조물량 확보 어렵고 함정 성능 및 품질 저하도 우려
함정사업은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기본설계를 수행한 조선소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까지 수행하므로 선도함 건조업체는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을 충분히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후속함 건조업체는 선도함 건조업체로부터 설계도면을 받아 건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이 적어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사업 구조이므로 삼강엠앤티는 후속함 건조에만 참여한다.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을 최소한 보유해 고정비 부담이 적은 업체가 저가로 후속함 사업을 계속 수주할 경우 대형조선소는 선도함 외에는 건조물량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더 큰 문제는 선도함 연구개발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속함 입찰이 이뤄지고 건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통상 선도함은 연구개발로 진행되기 때문에 건조 과정에서 다양한 무기체계들의 통합 등으로 인해 상세설계 내용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한다. 따라서 후속함 건조업체는 선도함 건조 과정에서 달라지는 설계 내용을 충분히 수용해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부분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외주인력 위주로 함정이 건조될 경우 30년 이상 운용해야 할 함정의 성능과 품질 저하가 우려된다.
이를 인식한 방사청도 가격 경쟁보다는 성능과 품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경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에 따라 현행 적격심사를 제안서 평가 방식으로 바꾸되, 함정건조 능력을 알 수 있는 사업수행 조직 및 인력 보유현황 점수를 높이고 제안가격도 일정 범주 이내이면 동일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담은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 개정안’을 최근 마련한 상태다.
하지만 방사청은 이 개정안을 내년도 1월 1일 이후 입찰 공고한 사업부터 적용하겠다고 한다. 제도 시행의 안정적 추진을 위한 준비기간 부여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따라서 8월에 입찰 공고될 울산급 배치-Ⅲ 3·4번함 건조사업은 지난해 2번함 건조사업 입찰의 2라운드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이 경우 대형조선소들은 질 것을 뻔히 알면서 입찰에 들러리로 참여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 3·4번함 건조사업부터 가격 경쟁보다 건조능력 위주 평가 이뤄져야
업계에서는 삼강엠앤티가 2번함에 이어 3·4번함도 저가로 수주할 경우 3척을 동시에 건조해야 하나 직영인력이 291명(2021년말 기준)뿐이라서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분야 관계자들은 “2번함 건조에 투입된 인력이 3·4번함에 투입될 수는 없어 최소한 700여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12,811명, 대우조선해양은 8,802명의 직영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2번함 사업을 수주했지만 삼강엠앤티의 사업 착수일은 원래 계획보다 상당히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 당시 경쟁했던 업체들 사이에서는 입찰 공고 전에 갖는 방사청과의 계약특수조건 검토회의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회사가 갑자기 입찰에 참여해 저가로 수주했기 때문에 협력업체들과 가격 협상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울산함 배치-Ⅲ는 기존 호위함을 대체하는 차세대 호위함이다. 함정 건조 과정에 정통한 한 예비역 해군 제독은 “스텔스 능력을 높이기 위해 복합센서마스트 등 고난도 기술이 들어가는 함정으로 한국형 이지스구축함의 전 단계 버전”이라면서 “연구개발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영업권만 인수한 회사가 과연 고품질의 생산설계와 체계종합 능력이 요구되는 함정 건조를 제대로 해낼지 걱정이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방사청은 이제라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 개정안’의 적용 시기를 앞당겨 8월 예정인 울산급 배치-Ⅲ 3·4번함 건조사업부터 가격 경쟁보다는 함정건조 능력 위주의 평가가 이뤄지도록 조치해야 한다. 드러난 문제를 인식했으면서도 개정안 적용을 늦춰 방산 부문 중 유일하게 영업이익율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함정사업에서 또 다시 저가 경쟁을 부추길 이유는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