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 언제까지 이렇게 '주먹구구식' 인가?”, 체계적 접근방식 마련해야
[뉴스투데이=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은 기원전 4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칼로 잘랐다고 하는 전설 속의 매듭이다.
프리기아(Phrygia)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고, 그 전차에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매듭이 달려 있었다.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그 매듭을 풀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그 지역을 지나가던 중 그 얘기를 듣고 칼로 매듭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대담한 방법을 써야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의 속담으로 쓰이고 있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문제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위키백과 참조).
• 최저임금 결정 과정, 매년 반복되고 있는 非효율적 줄다리기
매년 최저임금 문제를 풀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노·사·정(공익)의 모습을 보자니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떠오른다.
올해도 예외 없이 노·사 간 입장 차이가 컸고, 결국 공익위원들의 주도하에 2023년 최저임금은 시급기준 9620원으로 결정되었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반복되는 최저임금의 ‘주먹구구식’ 결정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좀더 체계적·과학적 해결방안과 접근방식을 모색하지 않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9620원은 올해 최저임금 9160원보다 5% 인상한 금액인데, 5%의 근거는 202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2,7%)와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4.5%)를 더한 값에서 취업자증가율 전망치(2.2%)를 뺀 수치라고 한다. 세 가지 모두 변수이다.
올해는 정권이 바뀌면서 최저임금의 ‘복잡한 매듭’에 업종별, 지역별 차등적용 여부 이슈까지 함께 거론되었다가 결국 논의는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특히 지역별 차등 적용은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듯하다.
지역별 구분은 법을 개정해야하는 사안이고, 최저임금이 타 지역대비 높은 지역으로의 인력 쏠림 현상 초래, 특정 지역이 ‘저임금 지역’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우려 등을 이유로 꼽는다.
• 최저임금 산정에서 변화 모색 필요, 생활임금에서 일부 ‘팁’ 얻을 수도...
하지만 지역별 구분도 최저임금 산정에서 함께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법 개정은 정말로 필요하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인력 쏠림 현상도 지나친 기우라 판단된다. 단지 임금 수준이 높다하여 특정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임금 지역’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우려는 관점을 바꾼다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여 적게 지출하고도 생활할 수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개념이 일부 반영되어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 「생활임금(Living Wage)」 제도이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만으로는 보장하기 어려운 주거·교육·문화비 등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급여개념이다.
최저임금이 노동자 1인에 책정되는 급여 수준이라면, 생활임금은 가구 단위를 기준으로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생활임금을 가족임금(Family Wag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활임금은 해당 지역의 실질적인 물가수준을 반영한 지출 또는 급여 등을 고려하여 산정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최저임금보다는 체감도가 높다할 수 있다.
• 영국 / 서울시 등 생활임금 제도, 생활수준 반영한 지역별 차등 적용
영국은 생활임금이 체계적으로 정착하여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영국의 생활임금은 물가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런던과 런던 이외의 지역으로 나누어 적용되고 있다. 이를 실질생활임금(RLW: Real Living Wage)이라 하는데 2022년 런던은 11.05파운드, 런던 이외의 영국 전역은 9.9파운드로 시행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차원의 최저임금(NMW: National Minimum Wage)을 국가생활임금(NLW: National Living Wage)으로 명칭을 바꿔 부른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은 NLW를 연령에 따라 차등적용하고 있는데, 2022년 기준 23세 이상은 9.5파운드, 21~22세 9.18파운드, 18~20세 6.83파운드 등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시도 2015년부터 서울시청 및 산하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3인가구 가계지출 모델을 기준으로 설계한 ‘서울형 생활임금’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 뿐만 아니라 다수의 시도 지자체들이 해당지역의 생활수준을 반영한 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중이다.
• 최저임금 관련이슈 해결위한 종합적 프로젝트 수행 필요
생활임금은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는 공공부문 위주로 시행되고 있으며, 민간부문으로의 확산이 미흡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최저임금 산정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임금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생활임금의 개념에서 일부라도 도입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팁'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개선방안 모색에 도움이 될만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본다.
우선, 데이터의 중요성이다. 최저임금의 매끄러운 합의 도출의 근거가 되는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데이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의 예로 우리의 현실을 살펴본다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시하는 최저임금 미만율(2021년)은 기준에 따라 4.4%(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15.3%(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노사 양측은 각자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어 혼란을 초래한다.
영국의 RLW 산정 모델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관리되고 있는 풍부한 데이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최저임금 산정방식 개선이다. 즉, 노사 양측이 모두 수긍하는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최저임금 산정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최저임금 산정방식을 개선한다면 모델 설계에 지역별 차등적용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최저임금 추세선 예측이다. 다음해 최저임금 결정도 난항을 겪고 있는데, 하물며 최저임금 전망치를 제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중기 최저임금 추세선을 미리 그려놓는 것은 노사 양측 모두에게 최저임금 결정의 유용한 기준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 영국 NLW 중기 전망(예시)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관련이슈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 수행의 필요성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슈들은 상호 연계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을 포함해서 최저임금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프로젝트의 수행을 제안하고 싶다.
최저임금 이슈화와 관련해서 다시 일년 가까운 시간이 주어졌다(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이 결정·고시된다는 가정 하에). 또다시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가 내년 3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잠시 뉴스거리가 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